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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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학교가 좀 조용한가 했더니….이게 무슨 꼴이람』
『평지풍파 유만부동이지 잘 하겠다는 애들을 왜 들쑤셔 놓습니까. 구속상태로 사법절차를 밟느라 학교에 나가지 못한 애들을 2중, 3중으로 처벌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2일 하오 1백 여명의 서울대 학생과 학부모가 총장의 공개해명을 요구하며 대학본부 건물 현관을 부수고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교수들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2학기 건대사건 등으로 구속돼 수업일수 4분의1 이상을 결석한 72명에 대해 학교측이 지난달28일 전과목을 F학점 처리한데서 비롯됐다. 이들 중 F명이 이 때문에 성적불량으로 학사제명 된 것이다.
이들 72명 가운데 40여 명은 이미 2월말까지 기소유예 또는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나 학교측으로부터 유기 또는 무기정학의 징계까지 받고 2학기에는 복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가 느닷 없는 전과목 F학점 통보를 받았다.
한가지 사안에 실정법의 심판을 받고 학교의 징계를 더한데다 성적까지 불이익을 당해 학교에서 추방된 셈이다.
사실은 이 때문에 서울대 당국도 지난해 9욀부터 성적처리규정을 고쳐 구속 학생의 경우 출석미달을 F로 하지 않고 수강신청 취소로 처리키로 했었다.
이 때문에 문교부로부터『운동권 학생들을 비호한다』는 질책을 받고 경위서를 제출하는 수모까지 당하면서도 버텨왔었다. 그러나 학교측의「사태징계와 학사징계는 구분돼야 한다」는 방침은 새 학기 들어 「데모와 졸업은 양립시키지 않겠다」며 더욱 강경해진 문교부 입김에 변질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판사는 죄를 뉘우치고 학교에 돌아가 공부에 전념하라며 집행유예로 풀어줬는데 왜 학교에서 이들을 좇아냅니까. 세상이 거꾸로 돼도 분수가 있지 이럴 수가 있습니까』아들과 함께 복도에서 밤을 새운 한어머니는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던 한 교수는『처별도 좋지만 한번 잘못했다고 제명을 시키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학교가 포기하면 운동권으로밖에 더 가겠느냐』고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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