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범인도 못잡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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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며칠사이에 살인·강도·강간사건등·전율스러운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서울의 고급주택가에서 40대 이혼녀가 피살된 시체로 발견되고 강도·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는가 하면 지방에서는 20대 강도범들이 남녀를 납치, 그중 한명을 수장하는등 가히 무법천지를 방불케했다.
이들 5인조 강도범들은 불과 13시간동안 승용차 2대를 탈취해 납치와 살인을 번갈아 자행하며 대구와 포항·밀양등지를 종횡무진으로 누비기 까지 했다.
그것도 치안본부가 얼마전에 내린 살인·강도등 5대범죄 소탕령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경찰의 비상망과 검문소를 유유히 뚫으며 승용차를 불태우는 여유까지 보였다.
액션영화에서도 쉽사리 볼수 없는 장면들이다. 이들이 이번 범행말고도 대구와 포항등지에서 이미 복면강도를 무려 5차례나 저질렀었다는 것도 놀랍고 강도 5명을 잡기위해 경찰병력이 자그마치 1천5백명이나 동원됐다는것 역시 어이없는 일이다.
범죄꾼들이 경찰을 얼마나 얕잡아 보고 치안상태가 얼마나 허술했기에 이 지경이 되었는지 한심할 따름이다.
우리 사회에 흉악한 범죄들이 이토록 다발하게된 것은 범죄꾼들의 절대수가 많아졌고 인성이 잔인, 흉포화 되고 죄의식이 빈약해진데도 그 원인을 찾을수 있다. 그러나 보다 큰 원인은 경찰의 무력화라 아니할수 없다. 어딜 가나 마음놓고 범행할수 있고 범행 후에도 잡힐염려가 없다는 생각들을 하는 모양이다.
경찰이 범인들의 범행기회를 차단하고 범행이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그러한 상황이 전개될 우려가 있으면 즉시 이에 대처하는 예방노력도 별로 없는것 같다면 범죄가 잠잘리 있겠는가.
범죄가 일단 발생하더라도 범인검거에 성의가 모자란것 같고 수사능력도 허점투성이 인것 같다.
경찰은 지난번 5대범죄 소탕령 외에도 걸핏하면 비상근무령 아니면 소탕령을 거푸 발령하고 무슨 작전을 펴놨지만 거개가 「탁상소탕령」에 그치고만 느낌이다.
이런 치안부재 상태에서 범죄가 들끓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일 것이다.
국가의 안전은 국토의 방위와 사회방위에 있다. 국토방위가 군의 소관사항이라면 사회방위는 경찰이 도맡는 분야다.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 국민이 마음놓고 생업에 종사하게 하고 행복된 삶을 영위케 하는게 경찰이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국민이 범죄앞에 완전히 노출되어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변고에 떨고있지 않는가.
도둑잡는게 경찰의 본령이고 예방과 수사가 모든 일에 앞서야 할텐데 수사보다 정보가 앞서고 일반범죄보다 시국범죄가 우선이라면 세상을 한쪽만 보고 다른 쪽은 외면하는 결과가 된다.
범죄를 미연에 방지한 경찰관에게는 표창이나 특진이 주어지지 않고 범죄가 발생된후 범인을 검거한 경찰관에게는 특전이 주어지는 체제에서는 범죄는 좀체로 근절시킬수 없다.
지·파출소등 일선 경찰에 배치된 경찰이 전체 경찰인력의 41%밖에 안되고 있는 인원배치 상황만 보더라도 경찰의 예방과 수사가 얼마나 부실한가를 알수 있다.
치안본부내에 범죄예방 연구기구 하나 없고 그나마 자질을 갖춘 우수한 경찰이 수사보다 정보쪽으로 흘러가는 현상이 시정되지 않고서는 범죄에 대처하기는 힘들것이다.
빈발하는 범죄를 더 이상 방치할수 없는 위기적 상황이다. 정책을 개발하고 경찰의 체질과 체제를 전환하는 일대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임을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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