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헤숙의 「나방이와 형광등」조남현(문학 평론가·건국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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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혜숙의 「나방이와 형광등」은 박완서를 비롯한「여성 동아」장편 소설 당선 작가 열명이 모여 만든 소설집 『분노의 메아리』 에 수록된 단편이다. 이 소설은 미술 학원을 경영하고 있는 어느 젊은 여자의 입장과 시각에서 부유한 집 아들이며 대학생으로 야학을 하고 마침내는 노동자들을 위한 대열에 뛰어든 남동생의 삶의 경우를 제시하고 해석한 것이다.
이 작품은 최근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문제의 한 장을 담았다는 점에서, 또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입장을 보여주는 가운데 작가 자신의 정직한 육성을 들려주려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기에 족하다.
이혜숙은 작은누나와 남동생간의 관계를 중심 구조로 놓고 그의 남동생과 여공과의 관계,남동생과 다른 가족들 사이의 마찰, 그리고 여공 순영의 비참한 삶의 경우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변부에다 깔아 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남동생과 여공 순영과의 일체감기도에 얽힌 에피소드가 중심 구조로 나아갈 수도 있다.
혹은 「우린 지금 너무 많은 옷을 껴 입고 있어」,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무게는 어느 누구나 똑같다」는 말을 각각 작은누나와 여공 순영에게 들려주면서「빈민들의 거리에 세워진 행복한 왕자」의 동화를 몸으로 재현하려는 남동생에게 초점을 부여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결말이 「나방이와 형광등」에의 비유로 메워져 있는 것을 보면 이 작품에선 핏줄로서의 뜨거운 감정과 삶의 방식에 있어서의 엄연한 거리감이 각기 제 모습을 유지하며 교차하고 있는 작은 누나와 남동생 사이의 관계가 가장 음미할만한 대목이 된다.
이 작품이 작은 누나를 단순한 관찰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작가의 분신으로까지 내세우려한 점은 위의 주장을 잘 뒷받침해준다. 작은누나는 남동생이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계층에 대해 준열한 비판을 가하면서 보다 대승적인 삶의 방식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을 듣곤 과대 망상이나 감상주의로 풀이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작은 누나는 아버지만큼의 격렬한 반응이나 큰 누나만큼의 이기주의적인 냉정성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 소설에서의 작은누나의 태도는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비슷한 인물을 설정하고 있는 최근 일련의 소설들에서는 솔직이 찾아보기 쉽지 않다.
작은누나는 여공 순영이 2년에 삼십만원 짜리 적금을 다 채우기 위해 큰 무리를 하다 유산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긴 했으나 그것도 잠시일 뿐 그녀는 「나는 네 (남동생) 편도다른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님」을 다시 한번 분명히 확인하고있다.
심퍼다이저로서의 자세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자기 자신의 삶」은 냉정하고도 야무지게 챙기고 있는 작은누나의 삶의 경우는 제반 논리가 거심력으로만 기운을 쓰고 있는 오늘의 우리사회에서는 「문제적인」인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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