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궁, 88 「금」에 먹구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한국 양궁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은 지난 79년 베를린 세계 선수권 대회 여자 개인전 및 단체전 우승을 계기로 줄곧 양궁 강국으로서 자부해 왔으나 새로운 경기 방식이 도입된 이번 호주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1개의 금메달도 따내지 못한 채 전멸하고 말았다.
이번 대회는 서울 올림픽을 1년 앞두고 새로운 경기 방식에서의 세계 양궁 판도와 새로운 얼굴들로 구성된 한국 양궁의 현주소를 가름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으나 한국은 은메달 2개(여자개인·단체전)에 그쳐 불안감을 드러냈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거둔 성과는 예기치 않던 무명의 소녀 궁사 왕희경 (왕희경·진해여고)의 세계 도약. 비록 개인전 우승은 놓쳤지만 대표 경력 5개월에 불과한 신예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전문적인 기술을 보완하고 커리어만 쌓는다면 김진호 (김진호)의 뒤를 이을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한국 양궁의 이 같은 부진은 훈련 기간의 절대적 부족과 그랜드 피타 적응력 미흡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랜드피타가 도입된 86년 한햇 동안 소련을 비롯한 서독·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은 줄곧 적응 훈련과 대비책의 연구를 거듭해 온 반면 한국은 아시안게임 준비에 몰두하느라 경기 방식의 특징마저 제대로 파악치 못했으며 아시안 게임이 끝난 11월부터 2월까지, 4개월의 짧은 훈련으로는 충분치 못했다.
이와 함께 그랜드피타 방식이 의외성이 많다고 하지만 기량면이나 커리어에서 세계정상급으로 자부해 왔던 구자청 (구자청) 전인수 (전인수)가 18강에도 오르지 못하고 탈락된 점과 아시안게임 3관왕 박정아 (박정아) 가 예상외로 부진한 것은 단순한 강훈 위주의 방법으로는 세계 정상에 도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반증한 셈이다.
따라서 오는 서울 올림픽 때 당초 목표했던 2개의 금메달을 따내기 위해서는 천편일률적인 발사연습에서 탈피, 거리별 이동 사격에 대한 적응력을 배양시키기 위해 다양한 훈련방법을 개발해야함은 물론 매회 탈락 위기에서 오는 심리적인 압박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절실한 과제로 남게 됐다.
또 이번 대회 남자 단체전에서 뜻밖의 우승을 차지한 서독팀이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 카본 화살 등 신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한국도 강풍·폭우 등 악 조건을 커버할 수 있는 새로운 장비 개발과 함께 첨단 과학을 이용하고 있는 미국·서독 등 해외 정보수집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