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판결에 "만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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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피고인들의 범행을 뒷받침할만한 직접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미필적 고의나 묵시적 공모도 인정키 어려워…』
10일 상오 10시30분쯤 서울형사지법 211호 법정.
「정당정치자금 조성을 위해 5·17 때 부정축재자들로부터 환수한 서울강남일대 3천여억원대 토지를 매각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속여 90억원을 가로채려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14명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재판장이 5분여에 걸쳐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숨을 죽이고 방청하고 있던 가족 등 30여명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피해액수가 90억원에 이르는 등 처벌필요성이 높지만 간접증거들을 종합해 보더라도 유죄로 인정키는 부족하며 「의심날 때는 피고인의 유익으로」라는 법 정신에 따라 피고인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재판장의 판결주문선고가 떨어지기 무섭게 방청석에서는 『만세』가 터졌다.
이내 법원과 검찰에 비상.
판결문을 확인키 위해 보도진이 서기과로 몰려가자 「공람중」이라는 답변이었으나 공람 코스인 형사지법 원장실이나 수석부장판사실은 물론 사무 국장실에도 문제의 판결문초본은 없었다.
실종된 판결문을 찾기 위한 추적이 계속됐지만 오리무중.
이 시간 판결문은 예정된 코스를 이탈해 검찰의 손에 넘어가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같은 유형의 사건이 6건이나 되는데 나머지 5건은 이번 사건 정도의 간접증거만으로도 모두 유죄가 선고됐다. 판결에 승복할 수 없으며 항소하겠다.』 검찰은 강경한 어조로 판결을 비난하고 나섰다.
천문학적 규모의 토지사기. 무죄 판결 앞에서 과연 「정의」가 어느쪽일까를 생각했다. <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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