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말투까지 여선생님 닮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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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학교죠. 3학년 이××선생님이 미혼이십니까? 처녀예요?』
9일 상오 11시. 서울강남의 공립 L중학교교무실. 선생님들이 모두 수업에 들어간 사이 잠시 머리를 식히던 김 교감(57)은 학생 어머니의 전화에 정신을 차렸다.
(이 선생 이라면 미스L중이라고 소문난 미인이 아니던가…)
『왜 그러시죠?』
『우연히 큰 아들놈의 일기장과 책상 위 낙서에서 알았습니다만…. 사춘기 애들이 선생님으로보다는 여성으로 보는 것 아닌가 해서요』
알만했다. 혼담 때문에도 가끔 그렇지만 학부모 전화의 십중팔구는 이런 전화였고 이를 심심치 않게 받아온 김 교감이었다.
『사춘기에 흔히 있는 호기심 때문일 겁니다. 걱정은 마십시오. 선생님에게도 특정학생에게 호의를 베푸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당부하겠습니다. 여교사가 해마다 늘어나면서 김 교감이 받는 고충이다. 때로는 여교사들에게 「화장을 어떻게 하라」든지 「옷은 어떻게 입어라」는 잔소리까지 해야할 때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봄에는 3학년학생이 처녀선생님에게 몰두, 정신치료를 받은 일도 있습니다. 중3쯤 되면 여선생을 짝사랑하는 학생이 생기기 시작하고 고교에서는 부쩍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학년초 교사 배정 때면 이런저런 사정으로 되도록 많은 남 교사를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공립중학교의 경우10명중 6명이 여선생님이기 때문이다.
남학생이 32, 여학생이 5학급인 L중의 경우 남 교사는 32, 여교사 37명이다. 서울시내 공립중학 전체로 보면 9천5백9명(86년 말)가운데 5천6백10명(59%)이 여선생님이다. 사립까지 치면 중학교의 여 선생님은 7천4백2명(전체의50·7%).
이 같은 중학교사의 여성화는 해마다 더해가고 있는 실정. 80년에는 서울 시내 중학교사의 42%가 여 교사였고, 공립은 50·5%였다가 6년 사이에 각각 50·7%와 59%로 늘었다.
『이렇게 가면 90년대에는 중학교도 여선생님 일색이 될 것 같습니다. 임용순위 고사나사법대의 여자비율이 자꾸만 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교위관계자의 걱정이다.
『힘든 일은 남자가 해야하고 숙직 등 귀찮은 업무도 모두 맡아야 하면서 대우는 하나도 다를 것이 없으니 불공평합니다.』 서울A중 정교사(32)의 불평이다.
대한교련의 교직의 여성화경향에 관한 연구에서는 41·9%의 남 교사가 『여교사증가로 교직의 지위가 저하됐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남학생 말투가 여선생을 닮아 「…이다」가 아니라 「…같아요」, 「…해요」식으로 변해버렸어요.』 L중학 이 교사(45)는 남학생들이 남선생에게 남자다움을 배우지 못하고 여선생으로부터 소심하고 꼼꼼한 성품을 먼저 배우게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여선생 반과 남선생반 분위기가 틀려요. 모범학생에 대한 판단기준도 남선생은 씩씩하고 쾌활한 학생을 모범으로 뽑는데 여선생은 얌전하고 선생님 말 잘 듣는 착실한 학생을 모범학생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김 교감의 말.
그러나 여 선생님들의 고충 또한 예사롭지 않다. 우선 사춘기의 남학생들은 교내 여기저기에 여교사에 관한 음담패설의 낙서를 써놓고 여선생님을 곤혹스럽게 한다.
『지난해 11월에는 학교화장실에 「××선생과 ○○선생이 학교 앞 여관에서 만나 ○하는 장면」이란 긴 설명에 괴상망측한 그림을 그려놓아 당황한 적이 있었습니다.』
김 교감은 이 때문에 틈나는 대로 중·고교에서는 낙서 지우기 작업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L중학교부임 2년째인 이교사(29·여)는 『지난해 10월 수업시간에 뒷자리의 몸집 큰 학생이 떠들어 야단을 치자 「××× 괜히 야단이야」하고 욕을 하며 나가버려 황당했다』고 실토했다.
여 선생님들은 밤중에 학생들의 장난전화도 받아야 한다. 야릇한 음성의 전화는 신원을 위장하고 밤중에 곧잘 걸려온다.
가장 큰 고충은 문제학생지도. 『여 선생님들이 문제학생을 지도하다보면 오히려 학생들에게 말려드는 경우까지 있어 남 선생님의 도움이 절대적일 때가 많습니다.』 김 교감의 어려움이다. <김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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