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개방 안하면 보복" 으름짱|의회와 타협 위해 내놓은 미 행정부의 「무역 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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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천6백여 페이지>
미 행정부가 지난달 19일 의회에 제출한 「무역·고용 및 생산성 강화 법안」 (종합 무역 법안)은 무역에 있어서 상호주의 원칙을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지적 소유권 보호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1천6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의 이 법안은 현행 통상 관계법의 개정을 비롯, 과학 기술·교육·지적 소유권·재정 제도 등 각 분야에 걸쳐 미국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광범위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법안은 ▲1974년 미 통상법 301조 (무역 상대국의 부 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보복)를 개정, 강화함으로써 미국과 같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하지 않는 나라에 대해 보복하는 상호주의 원칙을 도입하고 ▲관세법 337조 (특허·저작권 침해·기업에 대한 보복)를 개정, 미국산업에 대한 피해 여부에 관계없이 특허 침해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며 ▲일본 및 유럽에 대한 고도 기술 수출에 따른 규제를 철폐하고 ▲기업 비밀 정보의 공개를 제한하는 것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부품에도 덤핑 관세>
「레이건」 행정부는 의회의 보호주의 강화 압력을 완화하면서 미국의 국제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을 이 법안의 최대 목적으로 하고 있는 만큼 이 법안이 이미 의회에 상정되어 있는 상원이나 하원의 「종합 무역 법안」보다는 보호주의 색채가 약한 것은 사실이다.
상원 안은 한국 등 대립적 무역 관행을 계속하고 있는 나라에 대한 보복을 확실히 하기 위해 대통령의 재량권에 제약을 가하고 있고, 하원 안은 한국 등 대미 흑자국에 대해 매년10%씩의 흑자폭 삭감을 요구, 이것이 실현되지 않을 경우 수입 과징금을 부과함으로써 수입을 규제한다는 강력한 보호주의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행정부 안은 이 같은 의회의 강력한 보호주의 압력에 대한 타협안으로 통상 면에서의 상호주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셈이다.
이 법안은 또 외국 기업이 반덤핑 및 상계 관세 규정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완제품뿐 아니라 부분품에 대해서도 이 규정을 적용시키는 등 「우회 방지 조항」을 두고 있다. 앨범에 반덤핑 관세가 부과될 경우 그 부분품인 스프링·표지·내지 등에 대해서도 반덤핑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부분품을 수입해 미국 내에서 조립·판매하는 경우까지 규제한다는 것이다.
행정부 안은 이밖에 통상법 301조에 의한 보복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무역 상대국에 시장개방을 요구했지만 상대국이 이를 거부할 경우 보복 유예 기간을 24개월로 못박아 두었다.
한편 통상법 201조 (피해 구제 조항)를 개정, 외국 산업과의 경쟁에 뒤진 산업체에서 발생하는 연간 70만명의 실업자에 대한 훈련 및 재교육을 위해 10억 달러의 기금 신설 등 미국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의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보복 유예 24개월>
행정부가 제출한 종합 무역 법안은 의회의 확고한 입장이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의회와의 협상을 전제로 한 안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행정부 일각에서는 종합 무역 법안을 둘러싼 의회와의 협상 과정이 올해는 지난해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행정부로서 도저히 수락할 수 없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는 벤첸 법안 (상원의 종합 무역 법안)을 상원이 이미 상정해놓고 있고, 상·하원이 모두 민주당 주도하에 있는데다 행정부로서 협상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세금 법안이 없다는 점등이다.
그렇지만 행정부내 또 다른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만큼 입법 과정에서 좀더 신중해질 것이고 ▲이미 지난해 종합 무역 법안의 비토를 경험한바 있는 하원이 각계의 강한 비난을 받아가면서까지 다시 똑같은 법안의 관철을 위해 열성을 보일 것 같지 않으며 ▲금년에는 선거가 없고 ▲행정부가 의회와의 타협에 적극성을 띠고 있는데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통상법의 잘못인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의회 안에 점점 커져 가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오히려 작년보다 의회와의 타협이 순조로우리라는 낙관적인 견해도 있다.

<민주당 신중해질 듯>
앞으로 행정부안·상원 안·하원 안 등 3가지 안이 의회에서 절충되어야 하기 때문에 최종안이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무역적자를 삭감시키는 것이 최종 목적인 만큼 최종안이 행정부안보다 보호주의 색채가 약화될 것으로는 결코 상상하기 어렵다.
이번 미 행정부의 무역 법안으로 미루어 볼 때 국제 무역은 바야흐로 지금까지의 「다음간 무차별 원칙」에서 「2국간 상호주의 원칙」으로 기울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배명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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