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론자와 민중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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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위민이라는 말과 민중이라는 말처럼 오늘 우리 시대의 현실을 잘 표현해주는 것은 드문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 우리 사회의 갈등은 바로 위민론자와 민중른자 사이의 인식적인 차이라고 할수 있다.
위민이라는 말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한때는 내무행정의 책임자에 의해 행정적인 차원에서 사용되어졌음을 쉽사리 되살릴수 있다. 그리고 그말을 사용하게 되었던 의도성같은 것도, 일반서민들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고난을 덜어주려는 목민관적인 심정에서 비릇된 것임도 짐작할수 있다.
그런가 하면 민중이라는 말도 우리의 근대사에서는 오래 전부터 쓰여져 오던 것으로서, 그 말의 뜻을 오늘 우리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게된 것은 대체로 70년대부터라고 생각할수 있다. 부당하게 억눌림을 당하면서 인격의 소외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던 피지배층의 어떤 총체성 같은 것이 민중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다고 할수 있다. 그리하여 이제 이 말은 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자기 인식의 일체감으로까지 뻗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바로 이처럼 다른 두갈래의 시각, 즉 이땅의 현실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인식하는 서로 다른 두개의 시각이 하나는 위민이며, 또다른 하나는 민중이다. 위민의 시각은 오늘의 우리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파악하는것 같다. 마치 저 왕조시대에 어린 백성을 돌보아주었던 따사로운 위정자의 시각처럼 오늘의 우리들에 대해서도 그 어떤 도움을 베풀어주는 선정의 대상으로 인식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정치에서는 당당히 주인이요, 권력의 주체자임을 절감하고 있고 그 어떤 공직자도 우리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대우받아야 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곧 능동적인 책임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들을 시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정치인이 있다거나 행정 책임자가 있다면 이는 곧 시대의 저편으로 사라져야할 시대착오의 한계에 부딪쳐 있다고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또한 민중적인 시각에 대해서도 우리들이 갖게되는 감정은 실로 생경함 그 자체로서, 민중이어야하고 민중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람들의 실체가 어쩌면 현실보다 관념일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된다. 민중이라는 테두리속에 포함시켜서는, 민중이라면 이렇게 해야한다는 식의 의도적인 지향노선만이 제시될때 불현듯이 떠오르는 생각은 그러한 민중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실제로 우리들의 눈을 현란하게하는 그 많은 주장만으로는 암담한 현실을 극복할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될수 없기 때문이다.
위민의 시각이 우리를 지나치게 미숙아의 존재로 파악한다면 민중론의 시각은 우리들을 과대하게 촉성재배하고 있다. 보다 솔직이 말한다면 우리들은 위민이기에는 지나치게 성장한 시민이며, 민중으로 인식하기에는 또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오늘 신문에서 그어떤 의도성을 가지고 표제로 등장하고 있는 중간층이 곧 우리들 모두라고 장담할수도 없다. 다시 말하면 중산층 신화에 물들어서는 보수지향의 의식을 노출하여, 이제는 조금이나마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려는 현실안주의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로서의 우리들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규범적인 논리로나 또는 추상적인 관념으로 우려를 규정하러는 것은 현실의 우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작업에 불과할 뿐이다. 오늘 우리들은 우리들을 위하여 그 어떤 것을 하겠다는 위민론자의 주장이나 민중론자의 외침에 대하여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 더 이상 우리들을 재단하여 자기들이편리할대로 규정하여 그것을 마구 사용하는 그 어떤 작위도 이제는 우리들의 직감으로도 분간할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을 각자 자기의 편으로 끌고가려는 위민론자들이나 민중론자들의 인식은 어쩌면 우리들의 실존적 존재양식을 외면한 그들 자신의 둔감한 한계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다 솔직한 우리들의 참 모습과 진정한 욕구를 받아들이려는 그러한 진솔함만이 갈등의 현실을 극복할수 있는 기초가 될수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우리들을 의도적으로 몰고가려는 시도에는, 이미 그것이 한세대 이전이라면 몰라도 이제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위민론자와 민중론자가 우리들이 빠져나간 저 텅빈 자리에서 서로만의 높은 목소리로 아옹다옹하는 관객 없는 연기자임도 깨달을 때가 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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