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6·25전쟁 요충지 방어 중공군 섬멸, 용문산전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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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전사를 보면 중공군에 고립된 한국군이 수적열세로 고전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던 것 처럼 불리한 형세에서도 적을 제압하기도 했다. 중부전선의 요충지에서 있었던 용문산 전투는 고립된 방어전에서 성공적으로 공세전환, 적을 섬멸했던 전승의 사례로 전해진다.

박용한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국방일보 전문]

 6·25전쟁 물량 공세 중공군 섬멸…중부전선 최고 요충지 방어 용문산전투

육군20사단 이현수 병장, 김민수 상병, 김종민 일병이 용문산관광지 입구에 서 있는 용문산전투전적비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진 선배 전우들의 호국정신을 이어받겠다는 다짐을 하며 묵념하고 있다. [사진 국방홍보원 양동욱 기자]

육군20사단 이현수 병장, 김민수 상병, 김종민 일병이 용문산관광지 입구에 서 있는 용문산전투전적비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진 선배 전우들의 호국정신을 이어받겠다는 다짐을 하며 묵념하고 있다. [사진 국방일보 양동욱 기자]

용문산전투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 5월 17일부터 21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과 가평군 설악면 일대에서 중공군과 국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다.

육군6사단이 지키고 있던 용문산 일대에 막강한 물량 공세로 중공군이 공격해 오자 6사단 전초부대였던 2연대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이에 중공군은 이 전초진지를 주력부대로 오판하고 3개 사단을 동원해 총공격했다.

고립된 2연대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화력과 항공 지원을 받으며 남한강과 북한강을 접하고 있어 중부전선 최고의 요충지로 꼽히는 용문산을 힘겹게 방어해 냈다.

주력부대를 포위해 섬멸할 계획이었던 중공군이 2연대에 총공격을 감행하고 있을 때 기습 준비를 하고 있던 6사단 7·19연대가 중공군의 후방을 기습, 중공군을 역으로 포위하며 중공군을 섬멸 위기로 몰아넣었다.

7·19연대의 공격과 함께 유엔군과 국군의 화력지원이 더해지면서 중공군은 많은 전사자를 냈고 중공군은 섬멸을 피하기 위해 5월 21일 새벽 퇴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6사단은 곧바로 추격을 시작, 양평에서 가평과 춘천을 거쳐 화천발전소까지 60여㎞를 진격하며 중공군을 격퇴했다.

이 과정에서 큰 손실을 입은 중공군은 화천호에 이르러 퇴로가 막혔다. 6사단은 그대로 중공군의 후미를 공격해 중공군 대부분을 화천호에 수장시켰다.

이 전투로 중공군 3개 사단 2만여 명의 병력이 궤멸했고 이를 계기로 사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국군은 대대적인 반격 작전을 실행하게 됐다. 용문산전투의 패배로 인해 엄청난 전력 손실을 입은 중공군은 수세에 몰리며 휴전 협정을 제의하게 됐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이 전투 후 화천호를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라고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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