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차세대 모바일 AP, 삼성전자가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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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생산업체 퀄컴의 차세대 전략 모델을 삼성전자가 생산하게 됐다. 두 회사는 17일 “퀄컴의 차세대 모바일 AP ‘스냅드래곤 835’를 삼성전자의 10나노 공정을 통해 양산한다”고 발표했다. AP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반도체 부품이다. 스냅드래곤은 지난해에만 85억6900만달러(10조557억원)어치의 AP를 팔아 시장의 절반 가까이(42.6%)를 점유한 퀄컴의 대표 AP 모델이다. 스마트폰으로 치면 삼성전자의 갤럭시S 같은 라인이다. 이번 제휴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시장에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다질 거란 게 반도체 업계의 전망이다.

파운드리는 다른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를 대신 생산해주는 사업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독보적 1위 기업인 삼성전자이지만 이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세계 시장을 절반 이상 (지난해 시장점유율 59%) 차지하고 있는 대만의 TSMC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다.

삼성의 10나노 공정 우수성 인정
‘스냅드래곤 835’ 위탁생산 계약
업계선 최대 연간 2조 규모 추정
관례 깨고 생산업체 이례적 공개

삼성전자가 지난해 단숨에 세계 파운드리 시장 4위로 뛰어오른 게 바로 퀄컴과의 제휴 덕분이다. 지난해 14나노 반도체 양산에 세계 최초로 성공한 뒤, 이를 기반으로 TSMC를 제치고 퀄컴의 신제품 AP ‘스냅드래곤 830’을 수주했다. 이 거래 한방으로 2014년만 해도 6억400만 달러(7087억 원)에 불과했던 삼성전자 파운드리 매출이 지난해 25억2900만 달러(2조9700억 원)로 뛰어올랐다. 이번 수주도 정확한 규모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반도체 업계는 “최대 연간 2조원 수준일 것”으로 추정한다.

퀄컴의 차세대 AP 전략 모델인 ‘스냅드래곤 835’를 누가 수주하느냐를 시장이 주목한 것도 그래서다. 삼성전자가 거래를 따낸 건 10나노 공정 양산에 가장 빨리 성공했기 때문이다. TSMC 등 경쟁 업체들은 아직 16나노 공정 양산 체제를 가동 중이다. 반도체 공정의 혁신 수준을 가리키는 16나노, 14나노와 10나노는 거칠게 설명하자면 반도체 회로선의 폭이다. 이 폭이 짧을수록 더 작은 반도체칩을 만들 수 있고, 전자의 이동거리가 짧아져 데이터 처리 속도는 더 빨라지며, 그만큼 전력 소모도 적다. 10나노 공정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칩은 14나노 1세대 제품과 비교하면 성능은 27% 개선되고 소비전력은 40% 절감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협회 상무는 “세계 최고 수준의 AP를 만들자면 10나노 공정 기술을 가진 삼성전자에 생산을 맡기는 것이 퀄컴으로선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기술 주도권을 쥐게 됐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시장이 또 주목하는 것은 두 회사의 이례적인 발표다. 통상적으로 부품 회사들은 제품 생산을 어디에 맡겼는지 외부에 알리지 않는 편이다. 퀄컴이 “삼성전자에 생산을 맡겼다”고 발표하는 건 일종의 영업 전략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정창원 노무라 증권 전무의 설명이다. ‘세계 최초로 양산 체제에 들어간 삼성의 10나노 공정에서 생산된 AP’라는 수식어가 스냅드래곤 835 모델의 브랜드 가치를 더 높여줄 걸로 판단했단 얘기다.

이번 제휴로 퀄컴과 삼성전자의 복잡한 제휴 관계는 더 끈끈해질 것이란 게 정보기술(IT) 업계의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퀄컴의 AP를 생산해주는 ‘하청업체’인 동시에 자체 모바일 AP ‘엑시노스’를 생산하는 경쟁 부품업체다. 동시에 퀄컴의 AP 등 핵심 반도체 제품을 사들이는 주요 고객사이기도 하다. 정창원 전무는 “두 회사는 기술력이나 시장에서의 지위 등을 고려할 때 누가 갑이고 을인지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 사이”라며 “이번 제휴를 통해 윈-윈 전략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삼성전자가 애플의 AP 생산 물량까지 확보해 시장 위상을 끌어올리는 것이 차기 숙제라고 본다. 송용호 한양대 교수는 “모바일 AP시장 점유율 세계 2위인 애플의 물량을 TSMC로부터 되찾아오는 게 삼성의 단기 숙제”라며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치중해있던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강화해나가는 것은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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