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글로컬] 광주비엔날레 외압 드러났는데…사과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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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최경호 내셔널부 기자

최경호
내셔널부 기자

5·18 시민군이 ‘세월호’를 인양하는 모습 등이 담긴 ‘세월오월’. 가로 10.5m×세로 2.5m의 걸개그림은 2014년 광주비엔날레 때 특별전 출품을 앞두고 돌연 전시가 철회됐다. 작품 한 쪽에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게 화근이었다.

광주광역시는 박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조종을 받는 모습을 담은 작품을 전시에서 제외했다.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등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는 게 이유였다. 홍성담 화백은 박 대통령을 ‘허수아비’에서 ‘닭’ 형상으로 바꾸고도 전시를 유보당하자 8월 24일 작품을 자진철회했다. 홍 화백 등 작가 60여 명이 시민의 혈세로 만든 작품이 전시조차 되지 못한채 수장고로 향한 것이다.

2년 3개월여가 흐른 지난 14일. 윤장현 광주시장이 “2014년 당시 김종 문체부 2차관에게 ‘세월오월’의 전시 불허 압력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전시 여부를 놓고 극심한 내홍을 빚었던 대통령 풍자 작품의 전시가 철회되는 과정에 정부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윤 시장의 고백에 광주 지역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정부와 윤 시장에 대한 사죄부터 작품 전시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일각에선 “광주가 창작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부정했다”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자치21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도시 광주, 광주시민을 부끄럽게 만든 사건”이라고 비난했다. 80년 당시 신군부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던 광주에서 외압에 의해 작품 조차 걸지 못한데 대한 실망의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단체들 역시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라”라고 촉구했다.

시민들은 “늦었지만 작품 전시와 공식적인 사과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 외압을 시인하는 정도로 어물쩍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윤 시장은 외압사실을 고백할 당시 “지금 생각하면 그 작품이 당당하게 걸렸어야 할 작품이라는 것에 아쉬움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시정이 처한 여러 현안을 정면 돌파하지 못한 게 부끄럽다”고도 덧붙였다. 이런 윤 시장의 말은 모든 해법을 담고 있다. 전시회나 공식적인 사죄 없이 상황을 모면하기보단 ‘정공법’(正攻法)을 통해 지역민들이 느낀 허망함과 실망감을 신속히 어루만져줘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있다.

최경호 내셔널부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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