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우 사회부기자|올해는 설마했더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6일 서울대졸업식은 우려했던 사태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이를 지켜보는 교수·동창·학부모들을 우울하게 했다.
『무엇이 서울대졸업식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있는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더욱 조직적으로 벌어진 졸업생 퇴장소동을 지켜보면서 노교수들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원망과 허탈감을 숨기지 못했다.
영광과 보람으로 가득 차고 축하와 박수로 꽃피워야할 졸업식장은 처음부터 긴장의 분위기로 휩싸였다. 식장 주변의 교직원들은 식이 시작되면서 졸업생 눈치를 살피느라 바쁘게 돌아갔다.
총장의 식사가 낭독되자 학사 졸엄생들이 의자를 뒤로돌려 단상의 총장과 등지고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졸업식사 낭독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자리를 고쳐 앉은 졸업생들은 손제석문교부장관이 등단하자 『우』하는 야유를 보내면서 석사졸업생들을 선두로 썰물처럼 식장을 빠져나갔다.
파장 뒤의 장터처럼 텅빈 식장에서 남은 순서를 황급히 마무리하고 졸업식은 예정보다 30여분이나 빠른 47분만에 끝났다.
단상에 앉아있던 각 단과대 학장들의 얼굴은 경악과 분노에서 점차 허달과 체념의 표정으로바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서울대졸업식은 축하와 기쁨 대신 야유와 종이비행기가 난무하는 혼란의 장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이 참석했던 졸업식은 국무총리로, 다시 문교부장관만 참석하는 행사로 바뀌었고, 퇴장소동은 처음 있었던 지난해보다 훨씬 조직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올해는 설마」하던 학교당국의 놀라움은 그만큼 더 컸다.
이제 졸업식도 제대로 갖지 못하게된 대학이 서야할 자리는 어디인가. 대학을 졸업하며 마지막으로 갖는 행사에서 모교의 총장과 등을 돌려야하게 된 응어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정부의 각료이긴하지만 축하하러 온 모교 교수출신 문교부장관을 퇴장으로 맞게된 사태는 누구의 책임인가를 곰곰 생각할 때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의 행동을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축하의 자리마저 시위의 장으로 만들어 어쩌자는 거냐』는 노교수의 한숨 섞인 한마디는 텅빈 졸업생석에 메아리가 되고 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