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조<작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주일전 일요일 오전, 늘 듣던 KBS 제2FM 세계의 유행음악시간이 끝날 무렵 진행자의 갑작스런 작별인사를 듣게 되었다.
『「세월과 더불어」 를 마지막 곡으로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프로그램 속의 여느 멘트와 다름없이 짧게 흘러나온 이 절제된 한마디.
L씨가 진행하는 그 한시간은 일상의 어디쯤에 엄연히 기다리는 시간으로 살아있었다.
FM에서 흘러나오는 대부분의 외국음악이 그 가사를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일 때 그 음악의 빛깔을 온전히 살려 전달할 수 있는 진행자의 교양은 하루아침에 성숙된 것이 아니리라.
그후 몇번인가 라디오 다이얼을 돌려보았지만 연륜으로 쌓아간 그 특유의 정서를 느낄 수없어 다이얼은 방향을 잃은채 방치되어 있다.
방송국은 새로운 편성이란 기치아래 프로그램 개편때 새 목소리를 내세운다. 어느 시간엔 음악 이외의 분야에서 일하는 인기인을 진행으로 앉힐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항간엔 그 누구나 음악진행을 맡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되어 음악과는 낯선 사람이 불쑥 주저함도 없이 마이크를 잡는다. 그럴 때일수록 멘트는 길어지고 멘트가 길어질수록 공허하기 그지없다.
대부분 홀로 있는 시간에 듣게 되는 FM음악 (혹은 직장에서 일에 방해되지 않는 한계에서 듣는) 은 지나치게 친절한 멘트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그들은 아는지, 서로가 비슷해져 가는 스타일에 한번쫌 재고해볼 의향은 없는지 FM 담당자들은 엽서투고에만 프로그램인기를 의존하고 관단하는 것일까.
중·고등학생들의 쏟아지는 엽서외에도 더 은연한 애착으로 FM음악을 듣는 인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고맙겠다. 많은 FM 애청자들이 어쩔 수 없이 외국의 유행음악을 듣는 경우 무분별하게 외국풍에 경도된 정서전달에 날이 갈수록 아연해질 뿐이다.
말없는 진행으로 FM 애청자의 호감을 사는, 우리 정서에 알 맞는 곡선정, 노래 제목 하나로도 띄울수 있는 침묵의 메시지… 세월에 적신 우수가 깃들여 듣는 사람의 마음에 잃어버린 꿈을 상기시켜 주던 목소리.
『가장 아름다운 추억조차 시간과 더불어 사라지고 맙니다』 이런 한마디 멘트의 여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