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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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권교체가 불과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민정당은 여전히 당 내외로 과제만 잔뜩 안은 채 어느 것 하나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내각제 개헌은 안이 나온지 10여개월이 지난 지금도「관철」만을 다짐할 뿐 「합의」든 「합법」이든 실현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고, 차기 정권을 끌고 갈 여권의 기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런 가운데 민정당은 계속 집권과 정권창출을 부동의 목표로 삼고있으나 재집권에 이르는 민정당의 전략개념은 매우 모호한 상태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재집권과 표리관계에 있는 개헌문제에 있어 민정당은 작년 4월30일 전두환 대통령이 임기 내 개헌용의를 표명한 후 「타협」 과「돌관」 이라는 두 가지 방법론 사이에서 적잖게 방황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어느 쪽의 성사 가능성도 확보하지 못한 채 대통령직선제에만 집착하는 야당과 충돌을 일으킴으로써 정국을 더욱 난해하게 만들었다.
민정당의 개헌논리와 관철방법은 처음부터 상대방과의 원만한 타협이나 상호존중을 앞세우는데 인색한데서부터 출발했다.
타협을 앞세우고 합의개헌을 상당기간 목표로 내걸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마다 민정당은 쉽사리 타협보다는 돌관쪽에 더 비중을 두고 움직여왔다고 볼 수 있다.
합의개헌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개헌이라는 거창한 과업을 타결 짓는데 따르는 물가피한 대 협상의 자세나 괄목할만한 정치력의 발휘는 보이지 못했고, 정국상황이 줄곧 긴장·경직·대립을 거듭하는데도 정국주도를 자임하는 집권당으로서의 타개노력이나 방안제시가 미약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아마 박종철군 사건이 없었으면 민정당은 지금쯤 개헌안을 발의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빗발치는 분노와 비판 앞에 조기합법개헌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으며 「개헌」 자체가 실종되는 위기를 맞았다. 아울러 여당내에는 이것 저것 다 안되면 현행헌법대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신호헌논이 등장했다.
이제 와서 민정당 의원들은 합의개헌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가장 가능성이 희박하다는데 이론이 없다. 왜냐하면 민정당이나 신민당 모두 타협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의원들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4월 학원사태로 사회가 혼란해지고 김영삼씨가 5월 전당대회에서 신민당총재로 등장하면 벼랑 끝에서 극적인 타협이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추측이 있기는 하나 실제로 믿는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국면이 전환돼 여건만 조성되면 다시 합법개헌이 더 쉬운 방법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아직도 많은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남은 1년 안에 합법개헌이라도 해서 산적한 정치 일정을 무난히 소화하고 내년 2월의 평화적 정부교대가 가능하겠느냐는 본질적인 명제 앞에 누구도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우격다짐의 개헌통과과정은 큰 선거부담으로 차용해 그런 개헌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그런 식의 개헌보다 현행 헌법에 따른 정부이양을 각오하고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한 방법으로 비상한 조치를 취해 정치판을 전면 재정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아 다수 여권인사의 체질이 아닌가 보여진다.
개헌 못지 않게 민정당이 불확실한 전망 속에 고심하고 있는 것은 차기집권 후보자의 확정, 부상문제. 현대통령의 「권위의 누수」 현상 없이 차기 후보자를 가시화하고 힘을 모아준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여권사정으로 봐 차기후보자는 우선 전두환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야하고 차기수상후보로서 총선과 정권을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과 지지 기반이 있어야 한다.
불과 1년을 남기고 평지돌출의 인물 부각이 어렵다는 점에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노신영국무총리를 가시권으로 점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민정당은 개헌 후 전당대회에서 수상후보를 뽑을 예정이므로 시기와 대상은 개헌의 모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국회직의 임기가 끝나는 5월이나 그에 앞선 여권의 인사개편에서 모종의 시사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차기 후보자의 부상지연으로 인한 여권의 혼선은 실세대화를 비롯, 대야 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과제의 난해성에다 민정당의 구조적 한계성이 겹쳐 민정당은 그 동안 정치를 정치로써 풀어 가는 정치력보다 국면 모면을 위한 기교에 매달리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왔다.
따라서 여권으로서도 이제 1년밖에 안 남은 이 시점부터는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게 되었다.
우선 개헌문제에 대해서부터 나름대로의 단안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여권판단대로 6월말까지는 개헌이 돼야 한다면 개헌노력은 더 머뭇거릴 시간적 여유가 없는 셈이다. 야당의 전당대회가 5월이고 3, 4, 5월은 계절적으로 시국이 여권에 매우 부담스런 시기다.
그렇지만 6월말 개헌목표라면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지금부터라도 당장 취해 나가야 마땅할 것이다. 우선 그 동안 말로만 제시해 온「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가시화 함으로써 스스로의 세득력과 입장을 강화해야한다.
석방, 사면·복권, 언론자유 등의 문제가 여권 이니셔티브로 해결된다는 확신을 줄 때 개헌 여건은 현저히 개선될 수 있다.
또 한가지는 선거법개정안의 문제다. 내각제 아래서의 집권자를 결정하는 방식은 다름 아닌 국회의원선거제도며 국회의원선거제도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채 내각제부터 선뜻 지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
1년 후의 성공적 정부교대를 위해 민정당은 이제 보다 대담하고 선이 굵은, 누가 보나 괄목할만한 정치를 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전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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