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8학군병」갈수록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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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올해 서울시내 고입 주간 인문고 배정교가 발표된 지난 7일상오 서울 강남의 K중(남녀공학)3학년×반교실. L양(16)은 배정통지서를 받아들자마자 고개를 푹 숙이며 울음을 감추지 못했다.
배정된 학교는 강북의 Q고 (남녀공학). 주위에서 익숙하게 들어 왔고, 또 당연히 갈 것으로 생각했던 세칭 명문 S·E·J 여고는 아니라도 강북이라니….
『아빠가 잘못했기 때문이예요. 학교도 학교지만 어떻게 세번씩이나 버스를 갈아타며 다니란 말이예요…』집에 돌아온 L양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또 울음을 터뜨렸다.
국민학교때 강남으로 이사온 L양 가족은 지금까지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서초동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거주기간제한에 걸려 강북으로 배정된데는 어처구니 없는 사연이 있었다.
지방에 선산을 갖고 었는L양 아버지는 또 85년10월 묘소 이전관계로 주민등록만을 지방으로 옮겼다가 한달만에 원상복귀시켰다.
이에따라 L양에게 적용된 거주기간은 주민등록 원상복귀 이후부터 계산한 1년.
올해 서울시 교위가 여학생에게 적용한 거주기간 기준은 20개월. L양도 당연히 타학군 배정대상자가 된 것이다.
『이렇게 억울한 경우가 있겠읍니까. 남들은 위장전입등 교묘한 방법을 다 동원하는데 불가피한 사정으로 주민등록서류만 잠깐 옮겼는데 꼭 이렇게 해야합니까』
L양의 아버지는 시교위를 찾아가 사정을 호소했으나 규정상 안된다는 설명만 듣고 발길을 되돌렸다.
강남의 또다른 학교인 S중 (남녀공학) 3학년X반 교실. 담임 C교사 (38) 는 배정통지서를 나눠주기에 앞서 좀 장황한 이야기를 해야했다.
『여러분은 이제 얼마후면 각자의 진로에 따라 고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흔히 강남의 고교라야 대학에 진학할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실업고나 타학군에 진학하게 되면 크게 낙담하는데 그 생각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알게될 것입니다]
배정고교가 발표되는 조마조마한 순간 C교사의 장황한 이야기는 몇몇 연합고사 낙방생과 실업고 진학자를 겨냥한 것이기도 했지만 반에서 유일하게 타학군에 배정된 M양(15)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시이기도 했다.
M양은 2학년1학기말 서울목동에서 이 학교로 전학했다.
공무원인 아버지가 직장을 옮기면서 직장에 가까운 강남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M양은 S중으로 전학한뒤에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 반에서 1, 2등을 다퉜고 선생님들로부터도 귀염을 받았다. 연합고사 성적은 1백96점.
M양도 L양과 같은 강배의 Q고에 배정됐다. 지난해 고입배정때부터 강남거주기간 기준이 적용됨에 따라「혹시…」하고 불안해 하던 타학군 「방출」 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M양의 강남거주기간은 기준에서 2개월 미달된 18개월이었다.
『성적이 나빠서 밀려난다면 억울하지나 않겠어요』끝내 울음을 터뜨린 M양을 달래느라 가족들은 진땀을 홀려야했다.
L양이나 M양의 경우처럼 올해 강남에서 타학군으로 배정된 학생은 남자 4백71뎡, 여자 2천2명등 2천4백73명. 강남에 거주하는 연합고사 합격자 2만4천8백57명의 9.9% (여학생만의경우 19%) 에 해당하는 숫자다.
같은 8학군 (강남·강동)내에서 주소를 옮긴 학생도 강북행. 오히려 위장전입자는 그대로 버티고 강남배정을 받았다.
올해 서울시내의 정규 고교탈락자는 3만7백91명. 그러나 시교위 당국자의 관심은 이 탈락자 숫자보다 강남지역의 방출자가 더 큰 문제였던 것이다.
『강남지역에 대한 시설투자는 이제 한계에 와있다. 강남주민이 강남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면 이제 스스로 학교를 짓든지, 아니면 전입자를 막든지하여 자구책을 세우는 방법밖에 없다.』시교위 관계자의 설명은 「8학군병」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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