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창태 <편집국장 대리> 법 운영 형평 맞아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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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법의 여신은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있다.
법은 그것을 실현할수 있는 칼, 즉 실력에 의하여 명령되고 강제되는데서 효력을 갖는다. 나치스는 『법률은 법률이고, 명령은 명령』이라며 법률과 명령에의 복종을 강요했다.
그러나 법은 칼에 의해 명령되고 강제되는 것만으로는 참다운 법이라 할 수 없다. 법에는 실효성과 함께 정당성이 필요하다. 정당성이란 말할 것도 없이 법의 이념인 정의와 형평을 의미한다.
로마인들은 그래서 법을『정의와 형평의 술』로 표현했으며 「파스칼」 은 『실력이 없는 정의는 무력하며 정의 없는 실력은 폭력』이라고 말했다.
법의 여신이 손에 든 저울도 바로 정의를 교량하여 형평을 이룬다는 상징이다. 「파스칼」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저울을 못 가지는 칼은 단순한 물리적인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폭력에 의한 지배는 실효성이 있다해도 정당성을 갖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
법률이 칼자루를 쥐었다해서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의무만 부과하고 처벌을 능사로 삼는다면 국민들은 이런 법을 자기들의 법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저항하고 탈법하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법률이 국민의 동의를 받아 자발적으로 준수되기 위해서는 누가 보아도 그것이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논리적인 방향으로, 형평의 원칙에 따라, 무사하게 집행된다고 인식되어야한다.
법률집행의 주체인 공권력자체도 스스로 준법에 솔선 수범하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한다.
공권력이 툭하면 법에도 없는 가택연금이나 특정인사의 외부차단, 합법적인 집회방해조치 같은 처사를 예사로 하는 곳에서는 일반국민에게 아무리 준법을 강조해도 먹혀들기 어렵다.
공권력 스스로가 법을 무시하고 남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인권을 외면하고 나아가서 고문치사사건까지 빚고있는 상황 아래서는 「정의와 형평」이란 법의 이념이 무색해진다.
형제복지원과 대전 성지원이 방치 될 수 있었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회적 약자의 기본인권에 대해 법과행정이 외면해온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수용대상이 아닌 사람의 강제감금과 강제노역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있다.
탈출한 원생들은 한결같이 수용시설 내부에서 당한 비인간적 처우를 고발하고 있다. 갇혀있는 원생들은 『구해달라』 는 쪽지를 외부로 내보내며 구출을 호소하고있다. 이것은 바로 그곳에 억울한 강제감금과 강제노역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강제감금이나 강제노역이야말로 신체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행위다.
헌법에는 분명히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고 돼있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압수· 수색· 심문·처벌과 보안처분을 받지 아니하며,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강제노역을 당하지 아니한다고 명시 돼 있다.
술에 취해 역 대합실에서 깜빡 졸다 끌려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사람이 실사 단 한 사람이라 해도 그것은 중대한 인권문제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성지원 문 앞에서 빚어진 폭력행위에서 누가먼저 시비를 유발했고, 누가 어떻게 손찌검을 했느냐하는 것은 후차적이고 지엽말단적인 문제다.
그런데도 사건수사는 성지원 간부들과 신민당조사단사이의 쌍방고소사건에 초점이 쏠리고 있는 것 같다. 본질적 문제를 애써 외면하려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언젠가 예산안과 조세감면법이란 주요 국사를 여당의 의원 총회장에서 한마디 토론도 없이 2분도 안 걸려 단독 통과시켜 놓고 여기에 격분해서 항의하는 야당의원들과 보좌관의 폭력행위만을 문제삼았던 일이 되살아난다.
선행원인은 외면하고 그로 인해 파생된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만을 침소봉대해서 칼자루를 휘두르는데 이골이 난 것 같다.
충남도경 지사실 농성사건도 그런 일례다.
신민당의원들이 도지사실에서 농성한다는 보도에 접하고 『원 저런, 금배지가 아깝지…』 하고 이맛살을 찌푸리던 사람들도 검찰이 칼자루를 빼들었다는 소식에 그만 실망스런 표정으로 얼굴색이 바뀌고 말았던 것이다.
『법은 법대로』 하겠다는 데 탓할 사람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법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쓰이는 인상을 풍긴다든가, 어느 한편에만 사사건건 엄격하게 적용되고 다른 한편에는 또 지나치게 관대해서는 정당한 집행이라고 할 수 없다.
강자는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고 약자만 걸려들게 한다면 약자는 진심으로 법을 지키려는 마음이 우러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눈앞의 위협 때문에 면종할지 모르지만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원한만 품게된다.
범법이나 탈법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도 별로 느끼지 않게 된다.
법이 이처럼 국민의 불신을 받고 원한의 대상이 될 때 사회와 정치는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불안상황에 대처하는 대응책으로 또 다시 법을 업신여기는 「초법적 강경조치」 를 들먹이는데서 불안감은 더욱더 가중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오늘 우리 사회의 불안양상을 해소하는 길은 법질서에 대한 도착증의 치료, 다시 말해 칼과 저울의 형평을 바로 잡는데서 찾아야 할 줄 안다. 법이 조자룡의 헌 칼 쓰듯 마구 휘둘러지는 풍조는 고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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