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 5백m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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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 남자 빙상의 배기태 선수가 87년 세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한국 빙상의 신기원을 이룩한 감격적인 쾌거다.
배기태는 남자 5백m 레이스에서 37초04의 기록으로 소련과 일본의 강호를 제치고 대회신기록까지 작성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기록은 세계 최고기록인 소련선수「페고프」의 36초 57보다 불과 0· 47초 뒤질 뿐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빙상의 세계 제패는 그야말로 기적이다.
우리 나라에 최초로 스케이트가 들어온 것은 1905년 캐나다 선교사「길레트」에 의해서였다. 그는YMCA의 현동정에게 짧고 날이 두꺼운 스케이트를 구두에 나사로 졸라 매주어 타게 했다.
1910년대 중반에 미나리 못이나 경회루 연못, 창경원 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늘면서 스케이트는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 번째 국제대회라고 할만한 경기에서 한국은 맥을 못 춘 우물안 개구리였다.
25년 제1회 조선·만주대항 빙상대회에서 이복남이 5천m에서 2위를 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우리 빙상의 가능성이 확인된 것은 33년1월 제4회 전일본 빙상경기 선수권대회 때였다 이성덕은 일본의 올림픽 선수 등 강호들을 물리치고 5백m에서 48초로 우승했던 것이다.
이성덕의 5백m 우승은 지금 배기태의 세계 제패로 이어지고 있다.
스피드 스케이팅 5백m는 바로 육상 1백m격의 경기다.
이제부터의 과제는 5백m 세계신기록 수립과 나머지 종목 석권이다.
세계 스피드 스케이팅의 역사에는 기라성 같은 선수들의 이름이 남아있다.
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1천 5백m· 5천m· 1만m 3종목에서 우승한 네덜란드의 「아드·센크」, 최초로 5백m에서 40초벽을 깬 소련의 「예프게니·그리신」이 있다.
또 80년 미국 레이크 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빙상 사상 최초로 5관왕이 되었던 미국 「에릭·하이든」의 신화도 있다.
그러나 그 위대한「하이든」 조차 세계기록은 하나도 세우지 못했다. 그것은 링크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기록은 좋은 링크의 산물이다.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기록은 거의 소련의 메데오에서 작성되고 있다.
우리 배기태가 메데오건, 어디서건 세계 신기록을 세울 날도 멀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 빙상의 세계 제패는 이제 이어가는 노력 여하에 달리게 되었다. 긍지와 자신에 찬 한국인은 무서움 없이 앞길을 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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