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요인」많아 초소축 불가피|통화대책 배경과 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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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작년 하반기부터 경상수지 흑자가 불어나면서 그동안 일련의 통화관리조치를 춰했던 정부가 14일 주로 해외부문을 대상으로 강력한 통화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대책은 특히 지금까지 외상으로 수입할 수 있었던 많은 품목(1천93개)에 대해 외상수입을 못하게 하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어 무역업계는 초비상이 걸리고 있다. 이번 조치로 무역업계의 연간 자금부담은 1조원 가까이 된다.
그만큼 통화수속이 심각한 당면경제과제로 부각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정부가 서둘러 통화대책을 새로이 내놓게된 배경은 1월부터 총통화증가율이 20%로 당초 억제목표(15∼18%)를 크게 넘어서는 등 연초부터 통화팽창의 적신호가 올랐기 때문이다.
1월중 총통화가 크게 늘어난 데는 구정의 현금수요라는 특수요인이 있기는 했으나 주로 수출호조로 경상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시현, 해외부문에서 3천71억원이 풀린데 기인한다.
해외부문의 통화증발은 2월에도 4천억원에 이를 전망이고, 이대로 가면 올해 해외부문에서 4조원의 통화증발이 일어나 통화안정증권 등 통화관리용 채권으로 흡수해도 총통화증가율이 24%에 다다를 것으로 통화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해외부문도 문제지만 올해는 통화관리측면에서 보면 총선거를 앞둔 자금 수요 등 통화불안 요소들이 만만치 않게 도사리고 있다.
아직은 안정세라 하나 소비자물가가 1월중 근래 큰 폭인 0·4%가 상승, 물가에 경보를 울리고있고 해운 등 부실기업 정리를 위해 앞으로 계속 뭉칫돈을 집어 넣어야할 판이다.
연초부터 증시가 천장을 모르는 활황세를 보이는 현상도 시중에 돈이 너무 많기 때문인데 정부로서는 모르는 체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원화절상의 가속으로 어느 시점에 가서는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기본방침은 올해도 해외부문의 증발요인은 공개시장조작으로 최대한 흡수하고, 그럼으로써 민간여신공급한도를 적절히 확보해 기업의 시설 투자촉진에 돈을 몰아준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신규차관도입억제와 외채조기상환 등에 의한 해외부문의 통화자체흡수 및 ▲통안·재정증권의 확대 발행을 계속해 왔다.
또 무역금융 융자단가의 인하, 수출산업설비금융의 제한, 연지급수입(외상수입) 기간 단축 등 수출관련 금융의 축소조치를 단행했다.
이번의 통화대책도 이런 기본방향은 그대로 밀고 나가되 강도를 더 높인 성격을 띠고있다. 연 지급 대상품목을 대폭 줄이고 원유는 외상수입기간(유전스)을 축소하는 동시에 무역금융 융자단가를 재 인하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통화긴축방식에 반발과 의견대립이 거센 점도 사실이다.
최근 무역금융 융자단가 인하논란에서도 나타났듯이 경제단체와 수출업계는 통화환수의 효과도 미미한데 수출에 위축을 준다고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한술 더 떠 경제계는 원화절상에 따른 수출채산성 커버를 위해 금리인하를 적극 요구하고 나서는 실정이다.
또 정부가 각 부문에 통화공급을 선별적으로 조정한다지만 대기업에 대한 자금수축은 국내산업구조상 곧 바로 중소기업에 전가되고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내수중소기업이 된다는 점도 지적되고있다.
통화당국은 이번 통화대책으로 기존의 공개시장조작과는 별도로 연중 9천억원 정도의 통화환수효과가 생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통화수속이 이번 대책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못할 전망이다.
경상수지혹자가 예상(50억 달러) 이상으로 불어나면 긴축의 고삐를 더 죌 수밖에 없고 정부도 이미 입장을 밝혔듯이 판세유예제도의 단계적 축소, 무역금융융자단가의 추가인하, 국영기업체의 차관조기상환 등을 확대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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