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앱 하나 깔면 동창회 회식·택시비까지 자동 n분의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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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특수 누리는 더치페이앱

회사원인 김민규(37)씨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총무를 맡고 있다. 동창의 직업은 공무원·언론인·금융회사 직원 등 다양하다. 김씨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 이후 열린 첫 모임에서 동창들에게 더치페이 앱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김씨는 KB국민은행의 모바일 앱인 ‘리브(Liiv)’를 스마트폰에 설치한 뒤 더치페이 기능을 사용했다. 김씨는 연락처에서 모임에 참석한 사람을 선택한 뒤 ‘계산하기’를 누른 후 카카오톡으로 1인당 분담금을 요청했다. 메시지로 송금 요청을 받은 참석자는 ‘머니 보내기’를 눌러 미리 설정해 둔 핀번호 6자리와 금액을 입력한 뒤 송금을 완료했다.

각자 핀 번호 누르면 총무 계좌로 송금
우리은행 ‘위비톡’도 더치페이 기능
농협, 어르신들 위한 큰 글자 서비스
KB국민 ‘리브’ 한 달 새 18만 명 가입
경조사비·손주 용돈도 앱 통해 보내
“주고받는 양쪽 모두 비용 정산 편리”

김영란법 시행 이후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되면서 예상 밖의 특수를 누리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은행의 모바일뱅크 앱(애플리케이션)이다. 더치페이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 은행 모바일뱅크 앱을 설치하는 가입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6월 28일 출시된 KB국민은행의 모바일뱅크 앱인 ‘리브’는 김영란법 시행 전인 9월 27일까지 42만 명이 가입했다. 3개월 동안 월평균 14만 명이 가입한 셈이다. 그런데 김영란법 이후인 28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한 달 새 가입자 수가 18만 명 늘었다. 더치페이 기능을 제공하는 NH농협은행의 ‘올원뱅크’도 가입자 수가 급증했다. 8월 출시 이후 일평균 4500명 수준이던 가입자수는 9월 28일 이후 일평균 1만 명 수준으로 늘었다.

KB국민·KEB하나·신한·우리·농협·기업은행 등 주요 은행 대부분이 모바일뱅크 앱을 통해 더치페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모든 앱이 ▶계산하기 ▶청구하기 ▶송금하기 등의 기능을 공통적으로 제공한다. 휴대전화에 등록된 연락처에서 이름을 선택하면 해당 인원수에 맞게 비용이 분배되고 각 연락처로 비용이 청구된다. 이를 받은 사람은 간편 송금 기능을 통해 비용을 보내면 된다.

은행권 공동 모바일지갑 서비스인 뱅크월렛도 지난달 25일부터 더치페이 기능을 선보였다. 정대성 금융결제원 미래금융실장은 “최근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 중인 점을 고려해 금융결제원과 국내 16개 은행이 제공하는 뱅크월렛 서비스에 더치페이가 가능한 ‘뱅크머니 청구’ 기능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16개 은행 중 자신의 주거래 은행을 골라 등록하면 되기 때문에 별도의 계좌 개설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개별 은행의 모바일 뱅크 앱과는 달리 돈을 받기 위해선 해당 앱을 깔아야 하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더치페이 기능을 제공하는 모바일 뱅크 앱이 봇물을 이루면서 다른 은행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는 은행도 늘고 있다. 우리은행은 4일부터 ‘위비톡’에도 더치페이 기능을 추가했다. 대기업 홍보팀에 다니는 이모(30)씨는 모임이 끝나면 위비톡 대화창을 열어 자연스럽게 참석자에게 귀가 인사를 한 뒤 대화창 아래의 ‘위비톡 더치페이’를 눌러 비용 정산을 요청한다. 이씨는 “과거에는 식사 장소로 이동하는 데 드는 택시비 등 작은 비용은 더치페이를 요구하기 겸연쩍은 측면이 있었다”며 “대화방에서 바로 작은 금액까지 정산과 송금이 가능해 주고받는 양쪽 모두 비용 정산이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의 모바일 뱅크 앱인 ‘올원뱅크’는 중장년층을 위한 ‘큰글 송금’ 기능을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앱이 편리한 기능을 제공해도 스마트폰 사용이 불편해 이용을 꺼렸던 고객을 겨냥한 서비스다. 디자인업체 임원인 최문걸(53)씨는 “지인들과 골프를 치고 난 뒤 줄 서서 계산하는 불편함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내용 증빙이 가능하게 됐다”며 “큰글 송금 기능이 있어 돋보기 없이도 안전하게 송금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더치페이 기능을 사용하면서 모바일 뱅킹에 대한 거부감을 없앤 최씨는 경조사비와 손주 용돈까지 해당 앱을 통해 송금하고 있다. 이 은행은 이 밖에도 송금할 때 지문인증, 핀번호 등 5가지 방식 중 본인이 원하는 인증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영란법을 등에 업고 더치페이 서비스는 보다 더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공직자는 경조사비가 10만원으로 제한된다는 점에 착안한 서비스를 구상 중”이라며 “공직자로 등록한 고객에 한해 경조사비 10만원 이상 송금 시 송금이 안 되도록 하는 기능을 추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한은행 측도 “더치페이에 특화된 별도의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형석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영란법을 통해 금융 소비자들이 간편 송금, 생체 인증 등 핀테크 기술이 실생활에 어떻게 접목되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됐다”며 “향후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핀테크 기술이 활발하게 도입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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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BOX] 은행 공용 앱 ‘뱅크월렛’도 1인당 부담금 계산

은행의 모바일 뱅크 앱은 돈을 송금할 때 첫 1회에 한해 해당 은행의 계좌나 공인인증서를 등록해야 한다. 이러한 불편 없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은행 계좌를 이용해 더치페이 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금융결제원과 국내 16개 은행이 제공하는 뱅크월렛 서비스의 ‘청구하기’ 기능을 사용하면 된다. 산업·농협·신한·우리·SC제일·KEB하나·기업·KB국민·수협·대구·부산·광주·제주·전북·경남은행과 우정사업본부 중 자신의 주거래 은행 계좌를 등록하면 된다.

사용을 원하는 소비자는 앱스토어에서 ‘뱅크월렛’을 다운받은 후 자신의 주거래 은행을 선택한다. 이어 이름과 주민번호를 입력한 후 휴대전화 인증을 받는다. 지갑 비밀번호 6자리를 입력한 뒤 ‘청구하기’ 기능을 선택하면 된다. 연락처에서 자신을 포함한 참석자 명단을 선택한 뒤 ‘N빵(인원수대로 나누기)’ 버튼을 누른다. 총액을 입력하면 1인당 부담금이 자동으로 계산된다. 이어 ‘청구하기’를 누르면 참석자에게 해당 내용이 전송된다.

문자 메시지로 송금을 요청받은 사람은 뱅크월렛 앱을 설치한 뒤 등록된 계좌에서 머니를 충전한 후 돈을 보낼 수 있다. 돈을 보낼 때는 초기에 설정한 핀 번호만 입력하면 된다. 주고받은 내용을 조회할 수 있고, 보낸 돈을 취소할 수도 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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