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의 정」은 뜨거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혈육의 정은 뜨거웠다. 43년의 긴 세월도 남매의 정은 갈라놓지 못했다.
남매는 1시간동안 만나면서 떨어질 줄을 몰랐고, 부모 형제안부를 확인할 때마다 부둥켜안으며 통곡했다.
김만철씨는 꼭 붙잡은 누나 재선씨의 손바닥에 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남매의 정을 확인했고, 재선씨는 동생의 가슴에 온 몸을 기대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누나 만나 보라" 유언>
◇혈육확인=재선씨가 먼저『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느냐』고 물었고, 만철씨는『60년에 59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는데 내가 군에 입대하기 바로 전날 밤이어서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눈물만 흘리던 재선씨는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만철씨는 계속해서『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남조선에 재선이라고 하는 누나가 살고있다. 통일이 되면 만나 보아라」는 말을 하고 운명하셨다』고 전하며 남매는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정말 정이 많은 곳">
김씨 남매가 상봉하는 장면을 숙소에서 TV로 지켜보던 가족들은 눈물을 글썽이는 등 감회가 새로운 모습들이었다고 안내직원이 전했다.
김씨의 처남 정섭씨는 김만철씨 남매가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리자 자신도 눈물을 흘리며 침대로 가 엎드려 코를 훌쩍였고, 강남 광규군은『북에서는 아무리 친척이라도 먹을게 모자라 집에 오는 것을 꺼리는데 혈육의 정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며『이곳은 저렇게 울면서 반갑게 맞아주니 정말 정이 많은 곳 같다』고 말하기도.
또 2남 명일군은 상봉 장면을 보고 함께 울음을 터뜨리며『나도 빨리 고모와 가족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김씨의 장모 허씨는『이렇게 좋은 곳인 줄 알았더라면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 전부를 데리고 올 걸 그랬다』며 안타까와했다.

<거울 볼 시간도 없다>
김만철씨의 처 최봉례씨는 작년에 홍수 난 이후 북한에서는 배급이 잘 안돼 사료를 사다 나누어 먹은 적이 있다고 생활의 어려움을 폭로.
전기 제품이라곤 전기 다리미밖에 없고 TV·냉장고·라디오도 없이 지냈으며 라디오 방송은 중앙에서 달아준 스피커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고.
거울을 볼 시간 없이 주민들은 매일 쫓기고 그나마 거울이 귀해 최씨는 시집올 때 가져온 삼면경이 깨진 뒤 손거울조차 없이 지냈다는 것.

<각 공장에 「무리 배치」
김씨의 장녀 광옥양은『북한은 개인이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없고 나라에서 정해주는 대로 진학하거나 공장으로 가야한다』고 밝혔다.
김양은『대부분의 학생이 자기 재능에 관계없이 국가 지시에 따라 각 공장에 무리 지어 배치돼 주민들은 이를「무리배치」라 부르고 있으며 남자들은 군대에 가거나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하고 여자들은 재봉사나 예술 활동을 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2녀 광숙양은『남한에는 미국 놈들이 득실거리고 미국 놈들이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이므로 하루빨리 조국 통일을 해 남조선 인민들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배웠다』며『유치원에서는 9월께 산보를 가는데 놀이도「미국 놈 까부수기」「미국 놈 불지르기」등을 한다』고 폭로.
10일 점심식사는 숙소에서 함흥식 냉면으로 했는데 모든 가족들이 맛있게 들었다고.
김씨의 부인 최봉례씨는『북한에서도 옥수수 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고 있으나 고춧가루가 귀해 냉면다운 냉면을 먹지 못했는데 양념이 풍부한 냉면을 먹으니 제 맛이 난다』고 즐거워했고, 김씨의 처남 정섭씨와 막내 광호군은 두 그릇씩을 비워 왕성한 식욕을 과시.

<전기 밥통보고 감탄>
김만철씨 일가족은 10일 하오 숙소에서 저녁 식사 후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실정을 자세히 털어놨다.
김씨는『이북에선 냉장고·전기밥솥·밥통을 구경한 적이 없어 일본 체류 중 처가 전기밥통을 처음 보고「저런 물건을 우리는 언제 가져볼까」라고 부러워했다』고 말하기도.

<장모 등 백화점 나들이>
김만철씨 일가 중 장모 허문화씨(65)·맏딸 광옥양(17)·2남 명일군(15)·막내 광호군 (13)등 4명은 나흘째인 11일 하오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과 롯데 쇼핑센터 등을 관광했다.
장모 허씨 등은 하오 1시35분 서울 5가 8731 콤비 미니버스로 숙소를 출발, 경찰 백차2대의 호위를 받으며 강변로∼올림픽 대로를 지나 하오 1시50분 현대 백화점에 도착.
이들은 보도진들에게 손을 흔들며 바깥경치를 구경하는 등 시종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