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를 조심하라고』<황동규 시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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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악어는 우리에게 낯선 동시에 친숙한 동물이다. 낯설다는 것은 악어가 우리나라가 아닌 미주나 아프리카에만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며(이 시집 속의 악어는 북미산이다)친숙하다는 것은 악어가 잔인한 성격과 흉칙한 생김새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동규는 시집『악어를 조심하라고?』를 통해 악어를 서울에 위치시킴으로써「낯섦」을 깨고 악어를 조금도 위협적으로 그리지 않음으로써「흉칙한 상징」을 깨뜨린다. 이 같은 파괴 작업의 결과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악어에 대한 경계가 아닌 무관심이다. 이 시대의 악어는 쓸쓸하다. 그러나 유일하게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이다.
미국의 미확인 보도가 있은 후 악어가 서울 반포 지역 아파트 옥상 위에 올라가 있다. TV 연속극에 빠져있는 주민들은 악어를 인식하지 못한다. 악어는 그들보다「높은 곳」에서 「건방지게」서울의 불빛을 바라보며 비를 맞는「궁상」을 떨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의 어느 한 귀절도 악어가 위협적인 존재라는 암시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관심한 사람들의 발에 밟혀 배가 터지지나 않을까 시인은 걱정한다.
악어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하게 퇴화돼 버린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는 악어, 아무도 스스로의 몸 속에서 꺼내놓지 않는 악어. 시인은 너무 쉽게 길들여져 이제는 악어 따위에 관심이 없어진 우리를 향해 생 배를 아스팔트 위에 부비며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건방지고 초라한 악어가 되어 다가오는 것이다.【이성겸 <서울시흥동·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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