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니다 늑장보고<문병호 사회부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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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일 하오 대전 성지원 원생 집단난동 사태는 김만철씨 일가 귀순으로 조성됐던 모처럼의 흐뭇한 사회분위기를 다시 흩뜨려 놓았다.
운영비리 진상조사차 내러간 신민당 국회의원들의 접근이 저지 당한데서 머물지 않고 원장까지 포함된 난동자들이 국회의원은 물론 취재기자까지 집단폭행하고 기재를 빼앗고 서류를 강탈했다.
1시간 후에야 출동한 경찰은 또 난동의 진압·주동자 검거는커녕 M-16소총 6자루를 한때 빼앗기기까지 했다.
놀라운 것은 대전 현지에서 이처럼 진행되고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사태를 중앙에선 발생 후 몇 시간이 지나도록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건이 난지 1시간도 더 지난 하오 2시쫌 신민당 조사단이 폭행사건을 중앙당에 보고해 왔을 때 전국치안의 총 본산인 치안본부에는 단 한줄의 보고도 접수되지 않았었고 다시 1시간 더 지나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현지의 도경·경찰서·파출소에 차례로 전화를 걸어 확인하자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으나 별것 아니다』 『집단폭행 같은 것은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 끝났다』는 둥 한결같이 대수로운 일이 못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결코 「대수로운 일이 못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주재기자를 두지 못한 중앙지들이 현지에 급파한 취재기자들은 사건 전후 경찰 측의 조치가 지극히 수동적이고 적절치 못했음을 지적해 왔다.
이 사건은 다 아는바와 같이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연장선에서 일어났다.
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부랑인 수용시설 운영전반에 대한 논란이 있는 가운데 성지원에서 다시 원생집단 탈주사건이 일어나 신민당이 조사단을 내려보냈고 국민당도 뒤따라 조사단을 보냈다. 일부 원생들의 주장대로 야당의 정치 선전속셈에 분개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10일의 사태는 한마디로「치안부재 행정부재」 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확한 보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풍토는 불안스럽다.
지난번 박종철군 사건 때도 경찰은 아래에서의 허위보고를 기초로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어처구니없는 1차 사인발표를 해 사태를 눈덩이 굴리기 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결의가 확고하다면 신속하고 정확한 진상보고의 풍토조성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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