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반출됐던 보물금 문화재 조선중기 사리탑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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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본에 있던 조선중기 보물급 사리탑이 소유자인 일본인의 무상기증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5일 부산항에 도착한 이 사리탑은 광해군12년(1620년)에 만들어져 경기도남양주군진건면송능리 봉인사 부도암에 있었던 것으로 1907년 일본으로 반출되어 오사카 시립미술관 앞마당에「이와다·센소」 (암전선종)씨 소유로 보존되어왔다.
사리탐이 돌아오게 된 것은 원소유자 「이와다· 센소」 씨의 유언에따라 그의아들 「이와다·노리무네」 (암전칙종·72)씨가 일본오사카 한국총영사관과 교섭하여 이루어졌다.
문화재전문위원 황수영박사는 이 사리탑을 조사하고 『경기도양주군회암사터에 현존하는 무학대사부도 (보물 제388호)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가치가 있다』 고 평가했다.
돌아온 사리탑은 광해군때 세자 질의 수복과 창성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사리탑속에 있는 은제사리함의 밑바닥에 그러한 뜻의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 사리탑은 조선왕실이 당대 최고의 조각가를 동원하여 만든 것으로 조선중기를대표하는 조각솜씨를 엿보게하며 생동하는 힘과 섬세하고 조화를 이룬 예술성을 보여준다고 황씨는 말했다.
사리탑은 8각원당형으로 탑신을 받치고 있는 대석은 하단·중단·상단의 세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하대석에는 연꽃이 조각되어있고 중대석에는 구름무늬가, 상대석에는 연꽃과 당초문이 조각되었다.
탑신은 원형인데 거기에는구름속을 날고 있는 생동하는 용이 조각되었다.
지붕돌은 지붕면이 급하고 용을 조각하였으며 살짝 들고있는 추녀의 곡선이 아름답다.
지붕돌위에는 보주를 얹었다. 사리탐의 외곽에는 8각의 돌난간이 둘러쳐 있다.
사리탑에서 나온 사리기는 화초·꽃무늬가 새겨진 원형돌합속에 네겹으로 된 크고작은 유기함이 있고 그 유기함의 가장 내부에 은제함을 넣고 그 뚜껑에 금박을 붙여 생동하는 용무늬를 양각으로 새겼다. 그 은제함 내부에 작은 은제 원통이 있고 그안에 금제뚜껑을 한 수정사리병이 보존되었다. 사리병속에 한 과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문화재관리국은 이 사리탑의 원래 위치를 확인하기위해 지난달31일 문화재전문위원 황수영박사등에 현장조사를 위임했다. 조사결과 경기도남양주군진건면송능리에서 봉인사부도암터를 발견하였고 그곳에 남아있는 사리석함과 사리탑의 기단부분, 사리탑을 중수한 기록이 새겨진 풍암취우대사비가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부도암 사리탑이 돌아온것은 한일양국의 문화재·문화협력의 한 전기가 될것으로 보인다. 1965년 한일문화협정이 체결된후 우리에게 반환된 문화재는 총1천4백38점이다. 그러나 일본민간인이 자발적으로 기증한것은 이번이 최초다.
한일간의 문화재와 문화협력에 관한 합의의사록 (1965년 12월18일 작성) 은 「일본국민의 사유로 한국에 연유하는 문화재를 한국에 기증함은 양국간의 문화협력에 기여하게 될 것이므로 일본정부는 이를 권장할것」 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22년간 자발적기증이 전혀 없었다.
돌아온 사리탑은 국립중앙박물관경내에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전시할 계힉이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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