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주의 격랑속의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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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에는 미국의 보호무역입법활동이 강화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했었다.
그러나 막상 의회를 중심으로 각종 법안 상정이 러시를 이루는 사태를 보고 걱정이 앞선다.
외신과 각종 보도들이 전하는 것을 보면 요즈음 미행정부는 물론이고 의회·업계할 것 없이 온통 분위기가 보호주의 일색인 것 같고 심지어 유력의 창들은 보호주의 입법에 관한 한「1인1건주의」기치를 든 인상마저 짙다.
미국의 절박한 사정은 이해가 가지만 세계 경제질서라는 큰 테두리에서 볼 때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우리로서는 미국과의 밀접한 경제관계를 염두에 둘 때 더욱 그러하다.
지난해 미국 조야에서 그렇게 시끄러울 정도로 발버둥치면서 무역상대국들을 윽박질렀는데도 무역적자는 개선은 커녕 확대되는 등 경제가 뒤죽박죽이었고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지배하게 된 만큼 올해 들면 미국의 조야는 더 거칠어 졌다.
미 행정부도 행정부 나름대로의 종합무역법안이라는 것을 내놓을 예정이고 의회는 가공스러울 만한 보호무역법안들을 속속 상정하고 있다.
지난 1월초 하원이 지난해 상원에서 통과가 저지된 종합무역법안을 조금 손질하여 다시제출한데 이어 4일에는 상원에 「공정환율 및 정통상법」(제안자「보커스」의원 등), 5일에는 「87년도 종합무역법안」(「벤슨」의원)이 제출되었다.
무역규제 총괄법안 성격인 이 같은 법안들 이외에도 보다 구체적인 환율조정법안, 신발류 수입규제법안 등 각종 보호무역법안이 30여건이나 이미 나와 있다.
이들 법안들의 주요골자는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내고 있는 국가들이 흑자를 줄이도록 노력할 것을 강요하고 만일 그렇지 못할 경우 어떤 형식이든 보복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환율이 적정하지 않다고 미국이 인정하면 적정하게 조정토록 요청하고 그래도 시정되지 않을 경우 미국은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 하면 일정기간 동안 대미흑자가 줄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는 수입규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어있다. 또 무역상대국의 노동환경까지 통상정책에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며 지적소유권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는 강력히 수입규제도 취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들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것들이다. 미국은 종래 자국산업 피해여부 등 정황참작을 많이 했으나 급선회한 것이다. 통상외교차원에서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는 재량권마저 축소하려 드는 게 의회다.
새 법안들 중 어느 것은 한국·대만·홍콩 등 규제대상국가의 이름을 지적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으나 어느 것이나 주 대상이 대미흑자국인 것이 분명해 우리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법안들이 오는 여름께 이후 표결에 부쳐질 예정인데 법으로 확정되면 우리의 대미수출은 물론 경제운용에 새로운 제약이 될게 틀림없다. 미국의 요구사항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리부터 머리를 짜야 할 것이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강화 경향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미국경제의 병소는 보호주의로 근원적 치유가 어렵고 보다 원론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힘으로,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려하고 있다. 미국보호무역법안들은 지금까지 세계무역질서를 지탱해온 자유무역의 일반원칙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레이건」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미국경제를 위해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여 세계의 주목을 끌었었다. 미국은 이성을 잃지 말아야 하고 세계경제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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