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석 총영사 만난 북한 탈출 일가|북한이 곧 망할 것 같아 탈출|아시안게임은 서울 개최 사실조차도 몰라 서울올림픽 설명 듣고 평양서 열린다던데…|2시간 면담…일외무성직원들 입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창석 주나고야 한국총영사 등 3명은 북한에서 망명해온 김만철씨 등의 망명 희망지를 확인하기 위해 28일 밤 8시 조금 지나 마이즈루(무학)항에서 해상보안청관계직원의 안내를 받아 일본순시선 와카사호에 올라탔다.
이날의 한국측 면담진행에 대해 망명가족을 대표한 김씨 등은 외무성을 통해 이를 사전에 동의했었다.
면담은 「매우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2시간여 동안 이루어졌다.
면담에는 외무성 북동아시아과의 「모리모토」(삼본강경) 사무관등 2∼3명의 일본 정부관계자가 입회했다.
「모리모토」사무관은 지난 22일 11명에 대한 해상보안청 당국의 조사가 끝난 뒤 이들의 망명동기와 망명희망지 등을 확인하는 조사를 해왔다.
김총영사 등은 가장인 김만철씨와 1차 면담을 한 뒤 장모 허문화씨(68)·부인 최봉례씨(42)·처제 최치선씨(35)와 함께 면담한데 이어 마지막엔 가족 11명 전체와 대화를 갖는 순으로 진행했다.
첫번째로 면담한 김씨는 우리가 한국에 가면 한국에 있는 북한공작원들이 죽이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한국으로 갈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북한을 버리고 나온 것은 현재 북조선의 정치지도가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있지않아 망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탈출 동기를 밝히고 『그래서 적도 근처의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서 조용히 흙이나 파먹고 살고싶다』고 현재의 심경을 토로했다.
다음은 이들 일가와의 면담내용
◇김만철씨=▲저처럼 보잘 것 없는 인간 때문에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일본에 도착한 이틀 뒤 조총련에서 왔다는 사람과 변호사를 바로 이 자리에서 만났는데 저는 그 사람들과 마주하고 싶지도 않고 할말도 없어서 돌아가라고 했읍니다.
▲제가 남조선으로 가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이 교수형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북쪽의 대남공작은 문자그대로 특수한 부대이고 아주 무섭고 잔인합니다.
그래서 공화국을 배신하면 언제 어느 곳에서도 보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부대입니다.
배신을 못하게 되어있어요.
▲제가 조국공화국을 배신하지 않으면 남아있는 가족들의 목숨만은 부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아있는 가족들의 생명부지라도 시키려면 남조선으로 가서는 안됩니다.
▲남은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가급적 멀리 떨어진 적도근처라도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서 조용히 흙이라도 파먹고 살고 싶습니다.
▲저는 김일성주의 당원으로서 지난 40년간 받은 교육을 통하여 공화국을 탈출해 남조선에 가면 북한공작원이나 남한내 공산첩자로부터 신변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있었으며 남조선에 가면 죽인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확인해 왔었기 때문에 공화국을 탈출할 때 한국으로 갈 생각을 못 했읍니다.
▲남조선이 나빠서 못 가는게 아니라 공화국의 보복을 받아 죽게되므로 무섭기 때문입니다. 20년 전과는 달리 북한은 배신자에 대하여 철저한 보복을 하고 있읍니다.
▲제 고향은 함경북도 종성인데 60년대 중반까지 의과대학에 다넜습니다. 부친의 고향은 전라남도이며 한국에도 아마 친척이 있을 것입니다.
▲북한 탈출은 오래 전부터 계획해 봤읍니다. 제가 조국공화국을 버리고 나온 것은 현재 북의 정치지도가 잘못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며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있지 않아 망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정치신념입니다.
▲북쪽 정치가 망하고 제가 생명만 부지하고 있으면 그때는 나도 한국고향을 가 볼 수 있지 않겠읍니까.(탄식조로) 저 자신은 남조선으로 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족들, 특히 처남들이 극력 반대하면서 남조선에 가는 것을 고집하면 물에 빠져 죽겠다고 하니 전들 어찌 하겠읍니까. (이때 우리 정부관계자가 가지고 간 「한강」「오늘의 한국」「한국화보」등 책자를 보여주자 한동안 관심있게 뒤져본 뒤 감사합니다. 두고 보겠읍니다라고 했다.)
▲제가 탈출하던 바로 그날 우연히 매형이 방문해 『누님이 혈압이 높으니 왕진해달라』 는 요청을 받았으나 이번 탈출계획은 오래 전부터 계획해 왔던 것이고 탈출한 1월15일은 해상조사 당직이라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수가 없어서 눈을 딱 감고 탈출을 했습니다. 그러나 병든 누님을 두고 온 것이 가슴 아픕니다. 저는 북에 누님 네분을 두고 왔읍니다. (김씨는 면담 중 시종 정중한 태도로 말했으며 김총영사를 대사로 잘못 알고 「대사님」이라고 호칭했다.)
◇장모·부인 및 처제와의 면담 = ▲(김씨부인·최씨는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관한 우리측 설명을 듣고) 공화국에서는 자기들이 올림픽을 개최한다고 하던데….
▲(장모) 아시안게임이 무엇입니까. 그런거 들어본 적이 없읍니다.
◇가족 전체와의 대화 = 우리 대표자가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가 가족전체와 인사라도 하겠다면서 김씨 처남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인사를 하자 처남들은 거북한 태도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 면담자가 『한국을 가든, 다른 나라를 가든 아무쪼록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랍니다』라고 거듭 인사하면서 악수를 청하자 처남형제를 포함한 가족 전원이 악수에 응했으며 작별시 김씨의 장남(22)은 식당문 입구까지 따라나와 『안녕히 가세요』라고 정중히 인사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