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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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고문치사 혐의로 압송되는 경찰관들은 두터운 모자로 한결같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16세기때 서양의 귀부인들은 작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당시 유행했던 천연두로 생긴 마마 자국이나 질 나쁜 화장품으로 생긴 부스럼등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마스크를 하면 추운 겨울 마차로 외출할때 따뜻해서 좋았다.
그러나 마스크는 교외로 나갈 때보다 거리에 나설때 주로 사용됐다. 그러니까 마스크는 신체를 가리는데 쓴것이 아니라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로 수치심 제거용이다.
얼굴을 가리는 것으로 더 오래, 또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베일이다.
20세기초 영국의 「에드워드」7세때는 매력적인 베일이 유행했다. 단지 얼굴을 가린다는 뜻 이외에 더 아름답게 보이려는 의도가 있었다. 또 지금도 중동지역의 이슬람 국가들에선 여성들이 베일로 얼굴을 가리는게 보편적이다.
물론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가리는 행위들은 수치감이라기보다 보호와 경계와 구별의 관습이다.
얼굴이나 살갗을 내보인다는 것이 모두 수치로 인식되는 것도 아니다.
아프리카나 미크로네시아의 원시부족들은 벌거벗고 지내는걸 부끄러워하는 일이 없다. 오히려 문신으로 자랑스럽게 장식하기도 한다.
사람이 수치라고 여기는 것은 경멸할 행동, 정당하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다.
벌거벗었다고 해도 육체적·도덕적 결함을 드러냈다고 느낄때 수치감이 높아진다.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에서는 젊은 남자들이 10일마다 5인의 감찰관 앞에서 전나로 검사받는 풍습이 있었다. 몸에 군살이 생기지 않았나, 혹은 근육 조직 발달이 평균이하인가를 조사하는 것이다.
만일 적발될 경우엔 방탕·미식생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중 앞에 벌거벗겨 세운뒤 시외로 추방되었다. 그것은 남자로서 큰 수치였다.
남자가 남자답지않은 역할을 강요받는 것도 큰 치욕이다.
그리스신화에는 영웅중의 영웅인 「헤라클레스」가 류디아의 여왕 「옴파레」의 발밑에서 노예처럼 봉사한 것을 수치의 대표적 실례로 묘사하고 있다.
명예심에 상처를 입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수치심은 어떤 의미에서 사람만이 갖는 본능이다
성리학에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수악지심)을 인간 본성의 하나로 규정한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는 사람들이나 저들의 파렴치를 증악하는 국민의 감정이 모두 「의」로운 본성에 근거해서 일어난다고 본 선현들의 지혜가 다시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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