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5년된 가계빚 대책, 시즌2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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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경제부 기자

지금 봐도 2011년 6월 정부가 발표한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은 획기적이었다. DTI(총부채상환비율)나 LTV(주택담보인정비율)라는 큰 줄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가계부채 구조의 질적 개선을 꾀했다는 점이 그렇다. 변동금리, 거치식 일시상환 위주였던 주택담보대출 구조를 고정금리, 비거치식 분할상환으로 유도하는 게 그 핵심이었다.

처음엔 시장의 회의가 컸다. “역사상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를 이겨본 적이 없다”는 냉소와 함께 “고객이 변동금리, 거치식을 택한다는데 은행이 무슨 수로 막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 정책을 일관되고 강력하게 끌고나갔다. 각 은행에 목표치를 부여하고 독려 내지는 압박하자 은행도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수치만 봐서는 큰 진전을 이뤘다. 2010년 0.5%에 그쳤던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지난 6월 38.8%로, 비거치식 대출 비중은 6.4%에서 41%로 뛰었다. 고정금리·분할상환은 이제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올 초 시행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이나, 8·25 가계부채 대책도 그 틀을 충실히 따랐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수치상으론 분명히 대책이 적중했는데 체감 상으로는 가계부채 문제가 나아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사실 2011년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의 배경엔 정부 공식 자료엔 나오지 않는 두 가지 전제가 깔려 있었다. 조만간 금리가 오르고 집값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두 전제가 모두 빗나갔다. 2012년 이후 기준금리가 빠르게 내려갔고, 부동산 가격은 정부 부양책에 힘입어 오름세를 탔다. 그런 와중에 고정금리 대출이 늘자 그 덕을 본 것은 저금리 리스크를 덜게 된 은행이었다. 원금을 나눠 갚는 분할상환과 관련해서는 차주의 빚 상환 부담을 감소시키기보다는 소비여력을 줄인다는 우려도 있다.

기존 공식에서 벗어난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한 대책은 없을까. 전문가 제안 중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대출금보다 집값이 더 떨어지면 남은 빚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주는 비소구대출(유한책임대출)이다. 다른 하나는 차주가 언제든 고정과 변동금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중도상환수수료율을 대폭 낮추거나 없애는 방안이다. 둘 다 금리변동과 집값 하락의 책임을 소비자만이 아닌 은행도 부담케 하는 방안이다. 은행의 건전성을 관리하는 금융당국이 선뜻 택하긴 어려운 길이다. 그래도 무섭게 불어나는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선 노력을 다해야 할 때다. 정책의 일관성도 좋지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애란 경제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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