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채권 주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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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채권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 등에 따르면, 올 들어 전 세계적으로 신흥국 채권 펀드에는 3조6618억 달러(10월 26일 기준)가 유입됐다. 전체 신흥국 채권 펀드의 11.7%에 달하는 돈이 올해 들어왔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선진국, 그리고 주식 펀드(상장지수펀드 제외)에서 16조 달러에 가까운 돈이 유출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내에서는 큰 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한금융투자ㆍNH투자증권 등은 최근 잇따라 신흥국 채권 투자 설명회를 열었다. 증권사들 입장에서 그간 브라질 국채 등 신흥국 채권은 금기어였다. 2011~2012년 브라질 국채를 경쟁적으로 팔았다가 헤알화 가치 급락으로 고객들에게 큰 손실을 안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다시 투자를 권장하고 나선 건 고객들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마포지점 공현아 차장은 “연 10%를 웃도는 쿠폰(표면 이자율)에 비과세 혜택을 보고 들어갔던 고객들이 헤알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손실을 봤다”며 “지금 그런 고객들도 수익이 플러스로 돌아섰고 오히려 추가 투자를 문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NH투자증권은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브라질 국채를 포함한 해외채권을 4450억원 넘게 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 늘어난 수치다. 브라질 국채의 경우 이 회사의 최저 투자 금액은 5만 헤알(약 1800만원)이다. 신한금융투자도 올 들어서 1170억에 달하는 브라질 국채를 판매했다.

주식형 펀드에서 돈이 나갔지만 신흥국 채권 펀드에는 돈이 들어왔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국내와 해외 주식형 펀드에서는 각각 8조1086억원, 7341억원이 빠져나갔다. 반면 신흥국 채권 펀드에는 같은 기간 629억원에 새로 들어왔다. 현재 설정액이 2065억원인 걸 감안하면 전체의 30%에 달하는 돈이 올해 들어온 셈이다.

돈이 몰리는 것은 성과 덕분이다. EPFR에 따르면, 현지 통화 기준 신흥국 국공채 펀드는 지난해엔 원금의 15%를 까먹었지만, 올해는 최근(10월 26일)까지 12%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특히 브라질을 포함한 남미 국공채 펀드는 작년엔 -22%의 수익률로 고전했지만, 올해는 26%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출시된 신흥국 채권 펀드의 성과도 좋다. 28개 펀드의 평균 수익률이 연초 이후 10%를 웃돈다.

단기 전망도 긍정적이다. 최근 신흥국들의 금리 인하가 줄을 잇고 있다. 보통 금리가 떨어지면 채권값은 오른다. 금리 인하는 채권 투자자들이 반기는 뉴스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I)는 지난달 20일 올 들어 6번째로 기준금리를 낮췄다. 올해 초 7.5%에서 10개월 만에 4.75%로 2.75%포인트를 인하했다. 브라질 중앙은행도 지난달 19일 기준금리를 14.25%에서 14%로 낮췄다. 2012년 10월 이후 4년 만이다. 신환종 NH투자증권 글로벌크레딧 팀장은 “브라질 기준금리가 내년 말 11.5~12.5%, 2018년에는 10.5~11% 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도 중앙은행(RBI)도 지난달 초 기준금리를 연 6.5%에서 6.25%로 내려 경기부양책을 지속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내년도 주요 신흥국의 성장률(가중 평균)은 4.2%에 이를 전망이다. 올해 3.2%에서 성장폭을 더 높일 것으로 보인다.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수출로 나라 곳간엔 돈이 쌓이고(경상수지 확대)되고, 나라 살림의 가계부(재정수지)도 건전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인도네시아ㆍ브라질ㆍ인도 등 주요 신흥국에서 정부 주도로 경제 구조 개혁을 진행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인상은 리스크 요인이다. 금리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인 신흥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 이미 제법 수익률을 냈다는 점도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정의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정돼 있고, 올해 브라질 채권과 통화가 지나치게 강세였다는 점도 투자에는 부담”이라고 말했다. 박태근 삼성증권 연구원은 “신흥국 채권이 최근 강세를 보이는 것은 그간 저평가됐던 데 따른 수익률 ‘키 맞추기’일 것으로 본다”며 “연말 금리 인상 가능성을 감안하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기는 불안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란ㆍ임채연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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