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의식한 「이총재 배수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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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민우구상」으로 제기된 개헌전략을 둘러싼 신민당의 진통은 이총재가 김대중·김영삼씨의 견제에 크게 반발하고 나섬으로써 엄천난 당내 혼란으로 번지고 있다.
이같은 소용돌이는 자칫하면 신민당의 전도를 예측할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갈 것으로보인다.
이총재가 총재직사퇴부사를들고 잠적까지 한것은 언뜻보기에 두김씨의 제동에 대한 감정적 반발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배경에는 대통령직선제 하나만의 관철을 주장하는 두김씨의 투쟁노선에 대해 7개항민주화조치에 대한 협상도 병행하겠다는 개헌전략의 방향을 둘러싼 노선투쟁의 의미가 깔려있을뿐 아니라 지금까지 두김씨의 그늘아래 매여있다시피한 이총재가 독자적인 운신의 여지를 확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이 주선한 두김씨와의 3자회동을 취소하고 온양에 내려간 이총재가 7개항민주화조치의 병행투쟁관철을 다짐하고 두김씨의 노선을「전부 아니면 전무」로 몰아붙인데서도 이같은 이총재의 속마음은 읽어볼수가 있다.
이총재의 행동이나 발언을보면 현재로서는 총재직을 던질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좀더 강력하게 총재직을 수행하고 정치적인 폭을 넓힐 작정인 것 같다.
그동안 7개항의 민주화조치를 발표하고 대여협상을 주도함으로써 폭넓은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아왔다고 자부해온 이총재로서는 두김씨의 비판에 승복할수 없었을것으로 짐작된다.
이총재의 잠적은 이와 같은 여론의 지원을 의식한 배수진이라고도 볼수있다.
실상 신민당의 주류를 형성하고있는 동교·상도 양대 계보가 이총재의 지도력과 협상전략을 계속 문제삼고 인책공세로까지 사태를 발전시켜 나간다면 이총재로서는그야말로 당을 이끌수 없는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임시전당대회를 조기에 소집하고 당체제를 바꾸는 사태가 오게 된다.
그러나 만약 총재직 사의까지로도 해석될수 있는 이총재의 이같은 반발이 여론이나 당내의 동정적인 지원을 받게되고 이런 상황이 다시 두김씨에게 압력요인으로 작용, 두김씨의 태도를 변화시키게 된다면 이총재는 훨씬넓은 독자영역을 확보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런점에서 이총재로서는 마지막 도박을 한것이라고 볼수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태를 두김씨측이 어떻게 풀고 신민당이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신민당의 진로뿐 아니라 개헌정국전체의 풍향까지 가름한다고 볼 수있다.
동교동측은 이총재의 협상추진방향에 노골적인 불만을 감추지 않았었다. 이총재가 협상노선으로 신민당을 이끌고 갈 경우 신민당과 결별하는 방안까지도 검토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재야케이스로 비어있는 부총재 2석과 정무위원5석을 강경인물로 채워 당지도체제를 강경론으로 밀어가거나, 범국민투쟁기구에 신민당을 끌어들여 신민당의 행동반경을 제약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동교동쪽이 이총재의 반발을 그대로 묵인할지 아직은 알수 없다.
더욱 미묘한 것은 상도동쪽이다. 지난해 당체제정비문제로 야기됐던 김영삼씨와 이총재의 불화가 12·26 양자회동으로 상당히 씻겼을뿐 아니라 오히려 민주화 7개항추진에 이-김 두사람이 합작하는 듯한 인상까지 주었었다. 그러다가 상도동쪽이 재야의 압력등으로 최근 갑자기 이총재노선을 비판하는 쪽으로 급선회했지만 그 깊은 저의는 아직 모호한채로 남아 있었다.
아뭏든 앞으로 신민당이 두김씨측의 주장대로 직선제투쟁에만 주력키로 한다면 여권이 합의개헌에 더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독자적인 합법개헌의 스케줄을 조기에 추진할 것으로 생각할수있고, 이총재측의 협상론으로 귀결된다면 개헌안의 국회통과에 앞선 여야의 협상과정이라는 정치국면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전망으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양자의 절충으로 모호한 소강상태로 신민당사태는 일단 잠잠해질것으로 보이고 그에따라 개헌정국 역시 당분간 진전없이 맴돌것같다. 그렇다면 여권이 얼마나 인내심을 발휘할 것인지가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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