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계친족결 약화 처가쪽에도 참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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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사회에서 제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조상 숭배의 구체적 표현인 시제·명절 제사(차례)·기제사등은 어떤 변모를 맞게될까. 정월명절을 앞두고 최근 임돈희교수(동국대·문학인류학)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다예는 계속 올리긴 하겠지만 과거처럼 당내(8촌)간의 결속보다 형제·자매간의 친목 쪽이 더 강해질 것』이며 『시제는 서서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또 『기제사도 그 대상이 남계 4대조 조상들로부터 부모와 장인·장모로 변할것』으로 전망된다.
임교수는 『조부모·증조·고조들에 대한 기제사는 각기 따로 지내기보다 다례에 부모와 함께 「공동조상」으로 모셔지고 기제사는 부모 세대만으로 국한될것』이라고 말했다.
시제는 중시조 또는 파시조로부터 5대조까지의 조상들을 모시는 문중제사고, 차례는 정월 초하루와 추석날 아침 종손이나 큰아들 집에서 4대조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며, 기제사는 4대조 조상과 그 부인이 돌아가기 전날 밤12시에 올리는 제사.
시제의 사회적 기능이 「신분주장」 「문중위세」에 있었다면 차례와 기제사는 근친간의 사회적 결속감을 강조하는데 있었다.
임교수는 『이제 문중 마을을 유지하기도 어렵게 됐고, 문중원끼리 훌륭한 조상의 자손임을 증명함으로써 얻는 실질적 이득도 거의 없어졌다』 면서 사라져갈 시제의 운명을 점쳤다.
임교수는『한 조사에서 2백여명의 대학생중 시제의 뜻을 알고 있는 학생은 10여명뿐』이었으며 『게다가 시제에 참여한 경험이 거의없는만큼 이제 시제는 마을에 남아있는 노인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고 말했다. 실제로 어느 문중마을에선 시제지내는데 쌀60가마 들던 비용을 10가마로 대폭 간소화하고 나머지는 후손들의 장학금에 쓸 만큼 시제 양상 자체도 변하고 있다.
차례나 기제사의 사정도 그게 달라졌다. 임교수는『근친간의 협조는 농경사회에서의 노동력 확보가 주목적이었으나 그런 사회적 요인이 없어진 지금 다예에 다수의 친척들이 모이긴 번거롭게 됐다』고 말했다.
또 『기제사에서 앞으로 아들·딸의 재산 상속이 동등해지면 딸도 부모의 제사책임을 갖게될 것』이며 『제사에 참여하는 자손도 근친에서 형제·자매의 참여로 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차례나 기제사에 드는 비용은 장남이나 종손의 부담이었데 이는 재산 상속제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재산을 받은 만큼 제사의 의무를 지는 점은 중국·일본등과 비교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장·차남 구별 없는 균등상속제인 중국에선 제사의 의무도 똑같이 졌으며 장남 단독 상속제인 일본에선 제사도 장남 단독의 일이었다.
임교수는 『지금도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할땐 사촌보다 누나등 형제·자매간의 유대가 더욱 효과적』 이라면서 『앞으로 남계친족의 결속보다 형제·자매의 사회·경제적 결속감이 더 중요하게 대두될 것』 이라고 말했다.
임교수는 따라서『기제사의대상도 본인의 부모나 배우자의 부모일 가능성이 크며 남자도처가의 제사에 적극 참여, 처의 형제·자매들과 유대를 강화해 나갈 것』 이라고 내다봤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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