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 미국産만 메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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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미국과 베트남 간의 '메기 전쟁'이 결국 강대국인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지난 23일 오후 2시(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위원 전원일치로 베트남산 메기가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국에 수출되는 베트남 메기는 최고 64%의 관세를 물어야 한다. 같은 날 ITC는 하이닉스반도체의 D램 반도체에 대해서도 미국 D램산업에 피해를 줬다고 최종 판결했다.

ITC의 이번 판결은 베트남에 대대적인 반미 열풍을 몰고 왔다. 동시에 미국이 과연 스스로 주창하고 있는 바대로 '자유 무역의 신봉자'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발행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추악한 메기 전쟁'이란 제목의 23일자 사설에서 베트남산 메기 수입을 막기 위해 그간 미국이 벌여왔던 '공작'을 소개했다.

공교롭게도 베트남의 메기 산업은 미국인에 의해 육성됐다. 1990년대 미국이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면서 몰려든 미국 무역 사절단 중 한 사람이 메기 산업의 최적지로 메콩강 주변을 주목했다. 저임금에 기후조건도 딱 맞았기 때문이다. 메기는 새우와 랍스터에 이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수산물 3위에 올라 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몇년 만에 50만명의 베트남인이 메기 수출로 먹고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베트남 메기가 미국 냉동 메기 시장의 20%를 차지하면서 메기 값이 떨어지자 미국 생산자들이 베트남산 메기에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지난해 미국 메기 생산자들은 의회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2천종(種)에 달하는 메기 가운데 오로지 미국산 메기만 '메기(catfish)'라는 이름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든 것이다.

IHT는 이를 두고 "(미국 의회의 희한한 메기 분류는) 과학 원칙을 뒤집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베트남산 메기는 미국에서 메기가 아니라 베트남에서 불리는 대로 '바사'와 '트라'라는 이름으로만 판매될 수 있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메기 양식업자가 몰려 있는 미국 아칸소주(州)의 민주당 의원 매리언 베리는 베트남 메기가 식용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사용했던 고엽제 성분에 베트남 메기가 오염됐다는 허위정보까지 퍼뜨린 것이다.

급기야 미국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반덤핑까지 동원됐다. 베트남 메기를 반덤핑 케이스에 맞추기 위해 이번에는 '바사'와 '트라'에 불과했던 베트남 메기가 다시 진짜 '메기'에 포함됐다.

미 상무부는 베트남산 메기가 베트남 현지에서보다 미국에서 싸게 팔린다거나 생산비 이하로 팔린다는 어떠한 증거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상무부는 베트남이 시장경제가 아니라는 점을 문제삼았다. 시장경제라면 부담했어야 할 생산비용을 베트남 메기 수출업자들은 부담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상무부는 37~64%의 고율관세를 베트남 메기에 부과하기로 결정했으며, ITC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베트남의 정글에서 곤욕을 치렀던 미국이 이번에는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충실히 살린 셈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로 매수세가 줄면서 베트남 현지의 메기값은 '시장 원리'에 따라 폭락했다.

IHT는 "수천명에 불과한 자국 메기 생산자들을 과잉 보호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베트남에 심각한 반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베트남의 한 수산물 수출업자는 "미국은 과거(베트남전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가 불행하길 바라는 것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왜 문제인가=95년 필리핀은 세계화의 흐름을 받아들여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농업 부문은 비교적 경쟁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WTO 가입으로 연간 50만개의 일자리가 농업 부문에서 생겨나고 무역수지도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필리핀이 WTO에 가입한 이후 8년간 농업 부문 일자리는 되레 수십만개나 줄었다. 90년대 초반 무역 흑자를 내던 농업 부문은 적자로 돌아섰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고율 관세와 자국 농산품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등 선진국들은 아시아.아프리아의 빈국에 경제개발 지원금으로 5백억달러를 지원했다. 반면 이들 국가는 매년 3천2백억달러를 자국 농민들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가난한 나라에 대한 해외 지원금을 늘리겠다고 목청을 높인 뒤 얼마 후 자국 농민들에게 향후 10년간 1천8백억달러를 지원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IHT는 이는 선진국의 위선에 불과하다며 빈국들에 정말 필요한 것은 선진국의 자선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이라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부국들의 농업 부문 무역 장벽과 보조금을 모두 없앨 경우 빈국들에 1천2백억달러의 복지 증대 효과가 있다고 추정했다.

서경호 기자

<사진설명전문>
미국이 베트남 메기에 대해 반덤핑 고율 관세를 매기자 베트남 새우 양식업계가 다음 타깃이 될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 베트남 남부 카마우시의 새우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새우를 손질하고 있다. [카마우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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