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자선의 손길」 너무 형식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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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떡·과일·사탕.
아동 보호 시설·양로원 등에 쏟아지는 세밑 자선의 손길이 군것질 일색에다 너무 형식적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선물 꾸러미.
게다가 설·추석·성탄절 등에만 쏟아지는 소나기 성 온정에 받는 이들 쪽이 오히려 지치고 짜증스런 표정이다.
특히 아동보호 시설에서는 한꺼번에 밀려드는 손님대접에 환영회를 베푸느라 어린이들이 뛰어 놀 시간이나 공부할 틈마저 빼앗기고 억지 음식을 먹느라 배탈나기가 일쑤다.
23일 하오3시 서울 도동2가93 혜심원을 찾은 모 사회단체회원 3명이 준비해온 선물은 과일·떡·사탕 등 주전부리.
원장 임혜옥씨 (67· 여) 와20여명의 원생들은 오르간 반주에 맞춰 노래와 춤을 추는 것으로 이들의 호의에 답례를 했다.
사회단체 회원들이 이곳에 머무른 시간은 약1시간.
곧 이어 모 기업체 주부 사원들이 선물 꾸러미를 들고 원생들을 찾아왔다.
임 원장이 원생들에게 찾아온 손님들을 소개하는 순서가 있은 다음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원생들의 재롱잔치가 또다시 펼쳐졌다.
약1시간 뒤 주부사원들이 떠나고 선물봉투를 안고 방으로 돌아가는 원생들은 한결같이 지친 표정들.
『요즘은 매일같이 손님들이 찾아오시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마저 모자라요』원생 김모양 (16·H여상1)의 말.『꼭 연말이 되어야 우리들에게 선물을 갖다주는 어른들이 야속하다』 며 김양은 볼멘 소리를 했다.
혜심원의 경우 지난 4일 이후 23일까지 찾아온 온정의 손길은 모두 12차례. 군것질거리가 대부분이었다.
1백7명의 할머니를 수용하고 있는 청운양로원 (서울 구기동218) 역시 이달 들어 23일까지 12차례에 걸쳐 전달받은 위문품의 대부분이 떡·사탕·과일종류.
이곳에서 7년째 살고 있는 신봉이할머니 (77)는 『떡이나 과일보다 쇠고기 같은 것이나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물의 중복도 육아원·양로원 운영자 측의 고민.
이 달 들어 5개 사회단체로부터 위문품을 전달받은 군경 유자녀원 (서울 예양동8의6)의 경우 선물로 들어온 장갑이 모두 1백20켤레. 60명의 원생들이 1인당 2켤레씩 차지해야 할 판이다.
원장 서정자씨(66·여)는『원생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육아원 측과 상의하면 적은 돈으로도 실용적인 선물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천편일률적·형식적인 온정에 아쉬움을 표했다.
서씨는 또 『빠듯한 경제사정 때문에 육아원 측이 준비하지 못하는 영양가 있는 반찬 종류가 사당·과자보다 훨씬 소중한 선물이 될 것 같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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