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맞은 중동 건설 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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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올들어 해외건설은 중동에서 공사를 따내지 못해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고있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초까지만 해도「효자」소리를 듣던 해외건설이 요즘 들어서는 우리경제의 곳곳에 부담만을 주고있다.
또 해외 건설하면 부실의 대명사처럼 돼 버렸다. 내년에는 그나마 진출해 있는 건설업체들마저 대거 철수해야할 판이다.
그 좋다던 중동경기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우선은 뭐니뭐니해도 중동국가들의 신규공사 발주가 격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모든 탓을 그쪽으로 돌리기에는 우리 건설업계의 잘못이 너무도 많다.
시방서 하나 제대로 읽을 줄 모르면서, 또 계약서 하나 제대로 작성 못하고 그만큼이라도 해 냈던 게 오히려 신기하게 여겨 질 수도 있다.
중동국가들이 그 동안 오일 달러를 물쓰듯해 대규모 공사를 대량 발주했던 것이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이 공사를 많이 따 낼 수 있었던 큰 요인이다.
이제 그같은 상황은 1백80도 바뀌어 공사가 크게 줄자 쌓이고 쌓였던 잘못들이 한꺼번에 터진 것인데 이럴 때 일 수록 무엇이 잘못 됐던가를 철저히 분석해야 할 시점이다.
먼저 지적돼야 할 것은 그 동안 우리업계가 장사의 기본이 안 돼 있었다는 점이다.
상대를 속속들이 알아도 시원찮을 판에 중동의 관습조차 파악하지 못한채 장이 좋다니까 너도나도 뛰어 들었던게 실수였다.
시방서도 제대로 읽질 못했으니 클레임에 걸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공사대금 못 받는 것을 어디에 하소연할 데가 있을까.
또 거기가 어디라고 우르르 몰려나가 우리끼리 치고 받는 덤핑경쟁이나 벌이고 있었으니 얼마나 창피한 노릇인가.
이제 공사가 없어 철수를 서두르다 보니 웬 장비는 그렇게도 많은지 모르겠다는 업계 쪽의 얘기를 듣다보면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물론 하루아침에 유가가 떨어져 그쪽 사정이 어려워진 점도 있지만 사업한다는 전문가들이 그다지도 한치 앞을 못 내다봤다니 그 비싼 장비들이 고철로 변한 것도 누구를 탓할 일인가.
해외건설업계는 일본·미국으로 탈출구를 찾는 모양인데 중동에서의 우를 다시 저질러서는 안될 것이다. 【이춘성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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