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개선·평화 공세의 일환-소, 사하로프 유배 해제가 의미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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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레이건」대통령의 미국이 이란 무기판매 스캔들로 국내외적으로 신망을 잃고 있는 가운데 「고르바초프」의 소련은 평화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조치를 잇달아 취하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소련 반체제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사하로프」박사의 유배해제는 「고르바초프」가 당 서기장 취임이래 취해온 평화이미지 구축 노력 중 절정을 이루는 조치다.
특히 최근 미국과의 핵무기 논쟁, 우주무기 논쟁 등에서 공세를 펴 온 소련이 미국의 신뢰가 흔들리는 가운데 이같은 극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두 강대국간의 서방세계에서의 「이미지개선 전쟁」에서 시류를 최대한 이용한 셈이다.
소련 국내 정치적으로도 「사하로프」의 방면은 「브레즈네프」시대를 청산하겠다는 중요한 조치들과 시기적으로 일치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해빙을 기대하게 한다.
「브레즈네프」의 잔존세력이던 정치국원 「쿠나예프」를 제거한 뒤 이어 19일 당 기관지 프라우다지는 18년간의 「브레즈네프」시대가 『목적의식과 결단성의 부족으로 침체를 가져 왔다』고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브레즈네프」에 대한 최초의 공식비판인 이 논설은 70년대 말기와 80년대초에 걸쳐 『사회적·도덕적 질서의 부정적 현상이 확산됐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타스통신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에서 「쿠나예프」숙청에 불만을 품은 현지민족들의 폭동을 24시간만에 보도함으로써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이같은 국내불안 요소가 보도되는 것·자체가 지금까지 소련에서는 금기로 돼왔다.
「사하로프」의 유배해제 조치도 이러한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과 맥락을 같이 한 것이다. 「사하로프」문제는 소련의 국내문제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서방세계와 접촉할 때 항상 부정적 요소로 작용해 왔다.
하다못해 군축문제를 논의할 때도 「사하로프」등 반체제 인사문제가 복선을 깔고 등장해 소련의 입장을 약화시켜 왔다. 소련이 보다 강력한 외교정책을 펴며 평화공세를 합리화하기 위해서라도, 또 소련이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하로프」문제는 소련지도부에는 「브레즈네프」시대 이래의 큰 숙제였다.
현 소련지도부 권력체제의 측면에서 볼 때 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 또 지금까지 「고르바초프」가 보여온 문제해결의 유형에 따라 자신이 보다 유연성 있고 리버럴하다는 이미지를 내세운 예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물론 「고르바초프」의 집권기반이 강화됨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런 뜻에서 경제개혁, 부패추방, 어느 정도의 개방정책을 추구하는 「고르바초프」의 노선은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상당한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사하로프」유배해제 사실 하나만 놓고 볼 때 그와 관련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가 인권운동을 하도록 계속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고 「사하로프」는 계속 이러한 노력을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유배해제 발표 내용이 그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동지라든가 박사라는 호칭대신 『과학자 「사하로프」』라고 호칭하며 이번 결정은 『과학자 「사하로프」가 과학원의 지도하에 연구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고 돼 있듯이 그의 활동을 상당히 제한할 의도를 내보이고 있다.
소련의 한 고위당직자가 말한 것으로 보도된 『그는 훌륭한 과학자다. 그런데 과학자가 정치를 우리에게 가르치려한다. 정치는 우리가 더 잘 안다』고 말 한데서 알 수 있듯이 이번 결정이 반체제인사를 포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고르바초프」의 권력 기반 강화, 이에 따른 그의 개방정책 계속추구라는 내정적 요인 외에 미국과의 협상에서 평화지향 국가라는 공세를 펴기 위한 고도의 심리적 전략이라는데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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