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조용히 우세를 유지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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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37기 왕위전 본선리그 제1국
[제5보 (65~84)]
白.李昌鎬 9단 | 黑.曺薰鉉 9단

변에서 전개할 때는 일립이전(一立二展)이나 이립삼전(二立三展)의 원칙이 있다. 변에서 옆으로 전개하는 것은 근거를 확보하여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상대의 영역확대를 견제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曺9단의 65는 무슨 뜻일까. A 정도가 적당할 듯한데 이렇게 넓게 벌린 저의는 무엇일까.

"수가 궁한 것이다. 좁게 벌리자니 통째 공격당할 것이고, 그래서 흑▲두점을 버리려는 뜻이다."

오랜만에 입회인으로 나온 김인9단의 해석이다. 金9단은 '참고도1'을 보여주며 "흑의 고민은 1이 선수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수를 두었다가는 백4의 반격을 당하게 된다"고 말한다.

66은 수를 부리기 싫어하는 이창호9단의 담담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과거 일본의 다카가와(高川) 본인방은 이처럼 평범하게 중앙으로 한칸 뛰는 수를 좋아해 '평명류(平明流)'라고 불렸다. 이창호나 다카가와 같은 사람들은 소위 '쉬운 수로 이기는 사람들'이다.

68로 쳐들어가자 69로 응수했고 곧 70으로 뚫렸다. 왜 두점을 줄까 싶겠지만 실리적인 曺9단이 피같은 실리를 내줄 때는 그 궁한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단 한가지, 이 점은 기억해두자. 백△가 놓여 있기에 이 두점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만약 백△가 없다면 曺9단은 대마를 통째 죽일지언정 이 두점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흑79 때도 입장이 비슷하다. 이 수로는 '참고도2'의 흑1로 백 한점을 잡아버리고 싶다. 실리도 제법 짭짤한데다 대마가 안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수를 두는 순간 백를 당해 응수가 궁해진다(손빼면 백A가 있다).

이런 연고로 흑은 하변을 지키며 상황을 주시하게 됐고 백도 80으로 개운하게 두점을 잡게 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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