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돌린 여야…평행선 달린다-정상화 일보직전서 정국 급전직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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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국이 다시 급전직하했다. 극회정상화, 여야대화가 이뤄지는가 했더니 민정당의 상위강행이 불씨가 되어 정기국회는 결국 파행운영 속에 끝날 전망이다.
○…신민당의 국회불참결정으로 당분간 여야간의 공개적 교섭은 사실상 끊어지고 여야가 공유할 수 있는 정치의 장은 축소됐다.
11일의 총무회담에서 정기국회 후에도 헌특이 존속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대표회담은 국회불참과 별도로 추진하기로 했지만 대표회담은 설령 성사가 된다하더라도 거의 정치적 의미를 갖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간에는 대표회담추진을 위한 막후접촉이 시도되고 있긴 하나 민정당측은 국회 정상화 코앞에서 문을 닫아 잠갔다는 비난에서 벗어나려는 체면치레용 이상으로 기대않는 듯하고 신민당 안에서도 『얻을 것 없는 대표회담은 무의미하다』는 의견들이 강하다.
결국 민정당은 국민당 등 군소 정당과 함께 파행국회를 그대로 운행해 나갈 작정이고 신민당은 이제 92개 지구당별 직선제 쟁취보고대회를 열게 되어있어 각기 제 갈 길을 가는 수밖에 없게됐다.
신민당이 비록 지구당별 대회를 계속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장외투쟁의 열기를 그대로 지속시킬 정도는 못될 것이고 내년 해동기까지의 「월동대책」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문제는 민정당이 과연 이 겨울 동안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발의, 강행 처리하는「동계작전」을 감행할 것이냐, 여부에 달려있다. 최근의 동향으로 볼 때 민정당이 군소 정당의 지원으로 개헌 선을 확보하는, 이른바 「합법개헌」의 방침을 포기한 흔적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민정당은 군소 정당과 제휴해 국회를 운영해 나가면서 확보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연대관계를 강화해 나갈 것으로 봐야한다.
신민당도 국회불참이 국회포기는 아니라고 여운을 남겨두고 있어 동계작전의 징조가 보이면 국회에 등원해 일전을 겨루게될 것은 분명하다.
만약 그렇지 않고 소강국면이 의외로 장기화되면 신민당 내에 일고있는 당 체제 정비론 등 내연작용이 발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야당의 내부변화가 개헌정국에 의외의 변수로 등장할 요인도 없지 않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그리고, 결국은 여당이 합법개헌 쪽으로 가더라도 그에 앞서 한번쯤 더 최종적인 협상 제스처를 보이는 국면이 나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민정당이 신민당의 등원을 기다리지 않고 국회상임위를 단독 운영함으로써 정기 국회를 파행으로 끌고 가는 것은 일시적으로 여론에 몰리더라도 이제 신민당과 더불어 「모양 갖추기」정치를 하는데는 한계를 그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기국회 들어 몇 번의 격돌과 파란을 겪으면서 민정당내에는 신민당과 대화로 개헌안을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신민당을 막연히 정치 파트너로 보는 시각으로는 도저히 국정을 논의하기 어려운게 아니냐는 공감대 같은 것이 조성되어 왔다.
최근에는 신민당 없이도 국회는 굴러갈 수 있고 정치는 신민당하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외치는 당 간부들의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이 때문에 총무단이 대 신민당 접촉을 벌여도 『뭐 기대할게 있겠느냐』는 말이 예사로 나왔다.
민정당은 이 단계에서 신민당과 대화국면을 지속해 봐야 그들의 저의가 월동시간 벌기 작전에 있음이 명확하므로 차라리 오판의 소지가 없도록 정부·여당의 경성의지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더 이상 대야고려로 인한 운신 폭의 축소를 감수하지 않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 얼마 전 당정고위협의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신민당에 맞춰 민정당이 덩달아 강·온으로 변하기보다는 합법개헌 추진불사의 의연한 자세를 견지하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회담과 개헌특위 정상화 문제는 11일 여야 총무회담에서 국회운영과는 별개로 계속 추진한다는 합의를 했으나 민정당은 이에 기대하지 않고 있다.
대표회담에 대해서는 표면적으로 다소 의욕을 보이고 있으나 이미 당정 검토결과 소득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가지 의문점은 민정당의 상위 단독강행이 단순히 경성의지의 표현이라고만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상위강행과 중요법안의 단독처리가 신민당의 온건파를 궁지에 몰게 된다는 점과 협상에 방해가 된다는 점을 민정당이 몰랐을 리 없다.
설령 신민당이 국회불참 결정까지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민우 총재가 중심인 온건파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 민정당의 의도가 뭘까에 대해 야당 일부에서는 민감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신민당 지도부는 국회불참으로 당론이 급선회함으로써 다시 한번 지도력에 문제를 남기게 됐다.
비록 그같은 방침수정이 정상화를 코앞에 두고 상임위를 단독 운영한 민정당의 강경방침 에 밀린 것이라 하지만 국회정상화를 거의 기정사실화 할 정도로 대여 막후절충을 벌였던 당 지도부로서는 협상실패라는 커다란 실점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러한 좌절은 서울대회 연기과정에서 나타난 당론의 번복·재번복 파동과 겹쳐 당내책임론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확대되면 당 체제의 정비로 발전될 소지를 감추고 있다.
이미 11일의 정무회의에서 이철승·김재광 의원 등 비주류측은 지도부의 책임을 거론했다. 물론 비주류만의 인책주장으로 당내문제가 표면화할 리는 없다.
그러나 이번 국회불참 결정과정을 보면 그러한 인책론에 동조할 움직임이 확대되는 듯한 느낌을 주고있다.
서울대회의 연기에서 이니셔티브를 쥔 이 총재는 국회정상화에도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그는 막후절충을 적극 지원했고 웬만한 반대는 무릅쓰고 국회등원 쪽으로 밀고 나갈 결심을 하고있었다. 그러한 이 총재의 결심을 상도동 측도 어느 정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11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이 총재는 단 한사람뿐인 정상화 주장자였다. 서울대회연기로 이 총재에게 일격을 당했던 동교동 측은 민정당의 상임위 단독운영을 구실로 국회정상화에 강력히 제동을 걸었다. 그런데 이같은 제동을 뿌리치는데 지원세력이 되어줘야 할 상도동 측이 동교동 측의「확고한 반대」를 이유로 불참 쪽에 가세해 버린 것이다.
결국 이 총재는 혼자서만 국회정상화를 밀수가 없었다.
이 총재의 이러한 후퇴로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됐던 당 지도부의 능력부족과 책임 등의 문제가 다시 표면으로 부각되게 됐을 뿐 아니라 이번에는 단순한 주장으로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동향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같은 책임론이 구체성을 띠고 심각하게 제기된다면 당권의 실세화 문제가 등장할 것이고 당풍쇄신 파안에서 거론되고있는 당 체제 정비론과 더불어 전당대회까지 거론될지도 모른다. <김영배·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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