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력 그렇게도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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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화국면으로 접어들듯 하던 정국은 신민당의 국회불참 결정으로 일단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겨우 1주일밖에 남지 않은 회기동안 국회는 민정당·국민당만으로 운영되리라는 전망 속에 『헌특 시한은 연장할 수 있다』는 여야총무간의 합의에 한가닥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신민당이 등원거부로 당론을 반전시킨 것은 민정당의 상위 단독운영에서 비롯된다.
민정당이 상위 단독운영이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몰랐을 리는 만무하다. 계산된 「문전축객」이란 추측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유야 어디 있건, 겨냥한바가 무엇이건 여쪽의 이런 전략이 정치력 부족이란 비판은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정치는 결국 타협의 기술이다. 얻기 위해서는 주는 것이 있어야 하고 주고받는 과정에서 명분과 실(여의 적절한 조화를 기하는데 정치의 묘미가 있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상대방의 입장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풍토 속에서 국민의 공감과 승복을 받는 정치행위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여당의 옹졸함 못지 않게 야당이 쉽사리 등원거부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도 이해는 하지만 납득은 가지 않는다. 남은 회기 중에 민정당이 처리하려는 의안에는 농어촌부채, 노동관계법 등 신민당이 중시하는 안건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주요 법안들이 수정되지 않고 처리되는데 명분론에만 치우쳐 방관하고 있다는 것도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하긴 정당으로서 개헌문제 이상의 이슈는 없다. 예산안 단독처리 과정이 개헌안 처리에서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곰곰 따져보면 현재의 의석분포로 미루어 어느 쪽도 자기네 주장을 일방적으로 관철하기는 어렵게 되어있다.
야당의 열세는 말할 것도 없지만 민정당이라고 일찌기 시사한 대로 내각제개헌안을 단독 발의해서 처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물론 연내는 몰라도 내년초까지는 「강행돌파」로 나올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만 설혹 여에서 말하는 「합법개헌」이 성취된다 해서 이 땅의 정치적 갈등의 근본원인인 정통성 문제를 극복하는 길이 아니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
야당이 갈팡질팡하는 것 못지 않게 여당의 전략이 일관성이 없는 듯 비춰지는 까닭도 그런데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타협에도 시기가 있다고 본다면 여야는 그동안 있었던 몇 차례의 기회를 놓친 셈이 된다. 가령 여쪽 개헌안의 제시방법이나 시기 만해도 좀더 신중을 기했던들 타협의 가능성은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과 같은 대치상황과 여야가 각기 지닌 복잡한 내부 사정으로 미루어 타협의 기회는 아주 사라진 것 같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절망할 단계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합의개헌 말고 달리 묘안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야의 강경 대응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본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문제는 그것이 얽히고 설킨 그 많은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더우기 정치의 상대는 궁극적으로 국민이지 여야관계가 전부일 수는 없다.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것으로 정치의 승부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정치의 「기역 니은」도 모른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대화는 시늉이나 말을 앞세워 되는 것이 아니고 한두번의 대화로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면서 인내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 정치의 본산인 국회가 제구실을 못하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없어지고 정치불신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형태의 파국을 부를 소지가 된다는 점을 다같이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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