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공세에 묘책 없어 고심-혼선 빚는 신민 시국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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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이 시국대책을 정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민정당이 멀잖아 개헌안을 단독 발의하고 강행할 태세가 뚜렷한데도 이를 지지할 아무런 효과적인 대책도 마련 못한 채 당론이 왔다 갔다 하는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일단 오는 13일 전국 8개 도시에서 개헌대회를 다발 개최한다고 했다가 서울대회를 우선 재개해야 한다는 반론에 밀려 결정을 못 보았고, 이런 대책 부재 속에 5일에는 12대 국회해산→총선 요구라는 결정되지도 않은 당론을 대변인이 발표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또 서울대회는 한다고 했다가 5일엔 안 하기로 번복했으며 이를 6일 이 총재와 두 김씨의 3자모임에서는 다시 잠실운동장의 옥내집회로 연내 개최하기로 뒤엎었다.
이처럼 갈팡질팡 하는 것은 결국 효과적인 전략이 없기 때문.
○…5일 해프닝의 직접발단은 홍 대변인의 성급한 발표였지만 그같은 성급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결국 서울대회 재 개최문제를 둘러싼 당내 이견을 해소키 위해 그런 방법이라도 써서 당 내외의 관심을 돌려야했던 절박한 사정이 근본적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이날 홍 대변인이 발표한 회의내용은 대충 이렇다. 먼저 회의벽두에 이 총재가 『우리가 내린 사퇴서 제출 결단을 충분히 활용하자』고 이 문제를 제기.
회의가 진행되는 도중 몇 사람이 「의원직 사퇴의 결연한 의지」를 확인했는데 이 총재가 다시 『90명 전원이 사퇴하면 국회 해산이 불가피해진다. 다음 선거에서 대통령직선제·내각책임제를 걸고 국민의사가 어디 있는지 묻자』고 했고 이어 이에 대한 논의들이 나왔다는 것.
유제연 사무총장이 『국민의 심판을 다시 받자』고 강력히 뒷받침했고 이기택 부총재도 동감을 표시했다는 것.
또 이중재 부총재가 중간에 국회해산 문제가 거론된 것으로 정리까지 했으며 마지막 무렵 김수한·양순직 부총재가 『신중하게 재론』하자고 했고 이 총재가 『정무회의에서 다시 논의하자』고 매듭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발표 내용에 대해 노승환 부총재는 『이 총재는 이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거론한 적이 없다』고 부인. 노부총재는 회의가 끝날 무렵 유 총장이 『나도 한마디하자』며 의원직 사퇴서 제출·국회해산을 주장하자 김수한 부총재가 『그것은 여당의 복안』이라고 일축했고 양순직 부총재가 『전혀 없었던 걸로 하자』고 해 그걸로 양해됐다는 주장이다.
노부총재는 심지어 『지난번 선택적 국민투표 제의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나 참고 말았는데 이번엔 문제를 삼아야한다』고 까지 흥분했다.
이렇게 볼 때 경위야 어떻든 당론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나 몇 가지 의문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변인 발표 후에도 부인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는데 어느쪽에서도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없었던 점이나 회의도중 모처로 전화를 걸었던 이중재 부총재가 명백한 찬성은 아니었으나 적극적 부인을 하지 않은 점, 내용을 보고받고도 명백한 의사표시를 보류한 김대중씨 등….
이 총재와 마찬가지로 서울대회 재개에 부정적 의견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려진 홍 대변인은 자칫 서울대회 재개 결정을 내릴 이날회의의 타개책으로 이 구상을 이날 아침 이 총재에게 건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총재가 이 구상의 전부를 수용했는지는 모르지만 회의 전반부에 그 윤곽을 말했던 것도 분명하다.
홍 대변인은 자기에게 화살이 쏟아지는데 대해 『나도 당인인데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만둘 때는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내심 불만과 항변할 그 무엇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함구하고 있는 인상.
○…김영삼 고문은 그같은 논의가 신문에 크게 보도되자 『어, 무슨 소리야』라고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이날 하오 홍 대변인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발표 경위를 추궁.
김 고문은 △민주화를 해놓고 신바람 난 선거를 원하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고 △자칫 오해조차 받을 우려가 있으며 △신중치 못한 결정이었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 고문은 이어 김덕룡 비서실장을 동교동 김대중씨에게 보내 자신의 의사가 아니라는 경위 설명을 하도록 하는 등 세심한 배려.
사실 김 고문이 4일 하오 김대중 의장과 인편을 통한 접촉에서 합의했던 것은 △범국민 투쟁기구 구성과 △서울대회의 연기였다는 것이다.
김대중씨도 이날 하오 자파의 양순직·이중재·노승환 부총재, 이용희·김영배 의원과 모여 이 문제를 논의, 반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대중씨는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고 우리도 받아들여 주길 원치 않는 제의를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사술』이라며 정식제안으로 적당치 않다는 입장을 집약.
또 김대중씨는 이 아이디어에 대해 『선택적 국민투표와 성격이 유사한데다가 신민당이 허둥대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면서 『민정당이 단독발의를 하게 되면 상황이 크게 변하고 자연히 신민당에 주도권의 기회가 오는데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한다.
양 김씨 진영에서 국회 해산론을 반대하는 이유는 △선거를 한 뒤 어느 쪽도 개헌선을 얻지 못하면 현재상황의 재판이고 △이겼다는 것을 의석수로 할 것인지, 득표수로 할 것인지 기준이 불분명하고 △사퇴서를 내놓은 마당에 선거법 협상을 시작해야 되는 등 정국의 초점이 흐려질 우려가 있으며 △민정당의 강행통과·국민투표·총선 등으로 세번은 가질 수 있는 공세의 기회를 하나로 줄여주는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는 것 등이다. 또 실은 의원직 사퇴를 당장의 현실문제로 옮기는데는 많은 난점이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이번 해프닝을 통해 신민당은 전략부재를 다시 한번 드러낸 셈인데 한가지 명백해진 사실은 서울대회의 연내재개를 당내 거의 대부분이 피하고 싶어한다는 점.
또 비록 서울대회의 연내 재개를 결정했지만 옥내집회로 국한했고 전국 다발개최를 취소하는 대신 연말 연시를 기해 각 지구당별 보고대회를 갖기로 하는 등 이제까지 큰소리쳐 오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느낌이다.
따라서 공권력 등을 앞세운 여권의 강공에 신민당은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 못한 채 고심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 분명하며 익지도 않은 국회해산-총선 요구라는 발표가 나온 것도 고심의 한 산물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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