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얼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책을 읽는 일이 직업인만큼 나는 버스속에서, 지하철속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사람을 쳐다볼 때마다 「책이 들어 있는 얼굴」과 그렇지 않는 얼굴을 분명히 구별한다. 약속시간에 쫓기는 얼굴, 술에 찌든 얼굴, 막노동에 시달린 얼굴을 쉽게 알아볼 수 있듯이 「얼굴에 책이 들어 있는 사람」을 나는 대번에 알아보며 그런 나의 분별력은 대체로 정확할 것이라고 자부하며 속으로 즐긴다. 또한 그들의 말솜씨도 유심히 새겨 듣는게 나의 버릇인데 「얼굴에 책이 들어있는 사람」의 말은 재미가 있고 즉각 귀가 솔깃해진다.
왜 그들의 말솜씨가 나의 흥미를 일굴까?
우선 그들은 언어의 사용량이 많아서 따분하지가 않다. 적어도 그들은 「물건이 좋습니다, 쌉니다, 사세요」로 요약할수 있는 장사꾼들의 가난한 언어량을 뛰어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말투에는 적당한 비아냥거림이 있고, 역시 장사꾼들처럼 제 물건만 자랑하지도 않고, 따라서 똑같은 말만 되풀이해서 주워섬기지도 않고, 농조와 해학도 말속에 다분히 녹아있고, 우스개를 언중유골로 받아들일 졸도 알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뻣뻣한 주장도 녹일줄 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말들을 잘 못하고 편지쓰기를 싫어한다. 그 원인은 물론 책읽기에 극도로 게으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들이 재미도 없고, 워낙 언어량이 적은 탓으로 했던 말을 또하고 또 한다. 자연히 편지쓰기를 엄두도 못내고, 어렵사리 쓴 편지라도 하나마나한 사연만 나열하기가 일쑤다.
유명인사들의 말솜씨나 글재주를 보아도 나는 그들이 남의 눈치나 잘 읽고 처신하는 수완가인지, 오늘의 우리 현실을 제대로 꿰뚫고 있는 양반인지를 즉각 알수 있다. 그들이 아무리 고위직에 있어도, 돈이 많아도, 뜨르르한 학력으로 살아가는 능력가라도 그들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언어량, 부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 어휘력을 듣고 있으면 나는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지 않는 위인들은 자기 주장이 없는 위인들이다. 설혹 자기 주장이 있다하더라도 그들의 주장은 남의 의견을 묵살해버리는 무식장이들의 편견이기가 십상이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고등교육까지 받은 선남선녀들이 졸업과 동시에 책과 담을 쌓고, 언어량도 궁색하기 이를데 없고 자기주장도 없는 우량아로 살아가는 현실이다. 잘먹고 잘살기에만 급급한 그런 우량아들이 들끓는 세상은 짐승의 세계와 다름없다. 누구나 아는 바와같이 짐승들도 책을 읽을 줄 모르는 눈은 늘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다.
김원우 <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