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빚 갚기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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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농촌 부채는 그 절대 규모가 해마다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부채 상환을 가능케 하는 가계 경상수지마저 적자폭이 크게 늘어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농업 가계 수지의 급속한 적자 확대는 적어도 당분간은 농가 부채의 개선이 어려움은 물론 절대 부채 규모는 더 늘어나리라는 전망을 뒷받침한다.
현재의 농가 부채 수준은 이미 4조원에 육박함으로써 정상적인 가계 잉여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수준에까지 가버렸다. 4조원의 부채는 농가 호당 2백만원 이상 빚지고 있음을 의미하므로 현재의 정상 소득이나 가계 수지 규모에 비추어 특별한 별도 지원 없이는 자체 해결이 불가능하다.
이는 곧 자본 수지로 경상 적자를 메워 온 우리의 외채 누적 과정과 너무나 흡사한 형국이다. 농가의 경상 적자가 확대되면 될수록 빚 갚기 위한 빚내기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명확하다. 이미 올해만 해도 농가의 부채이자만 호당 2백만원을 넘어서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단적으로 반증한다.
결국 농가 부채의 문제는 두가지 측면에서 근원적 해결이 모색될 수밖에 없다. 그 하나는 이미 누적 부채가 정상적인 가계 수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정부가 나서서 과감한 자본 수지 보전 대책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은 특별한 재원을 바탕으로 획기적인 농가 부채 탕감 대책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고 부수적으로는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어주는 조건의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국회에서 여러 차례 제기된 문제지만, 농촌 부채 탕감 재원은 다른 대규모 정부 지출 재원에 비해 조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부실 기업에 대한 각종 특혜와 지원의 일부분만으로도 적절하고 유효한 농촌 부채 탕감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의원들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 있다고 본다.
때마침 집권 여당조차 농어민 부채에 대해 여러 번 관심을 표명해온 만큼 획기적인 특별대책이 세워지기 바란다. 부채 탕감 대책에는 물론 상환 조건을 개선하는 일도 포함돼야 한다. 현재의 농가 부채 중 30%가 고리의 사채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사채 부문은 특별 저리 금리의 금융 자금으로 대환 해 주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가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농가의 자체 상환 능력을 장기적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경상수지를 개선하도록 정책이 지원하는 일이다. 농업 경영의 적자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냉정하게 분석하여 부문별 소득 정책을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 80년대 이후의 농가 경영이 급속도로 악화된 배경은 두말할 필요 없이 농정의 소극성과 생산, 가격 지원의 후퇴, 그리고 분별없는 농산물 수입 정책 때문이었다.
국적 없는 단견의 비교 우위 정책을 앞세운 증산 정책의 후퇴와 가격 지지의 철회가 오늘의 농업 실패를 초래한 뿌리임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개방 경제가 진전될수록 농산물 보호는 비례해서 확대되고 있는 외국의 실례를 보면서도 농업 사양화를 방치한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큰 후회를 남길 것이다. 농업 문제의 시각을 새롭게 바꾸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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