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으로 치닫는 "개헌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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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민당이 서울대회의 강행을 확정한 것과 때맞춰 민정당이 개헌안의 단독 발의를 시사함으로써 개헌정국은 타협 가능성보다는 점점 더 벼랑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국회에 개헌특위를 만들어 연말까지 합의개헌을 이룩하겠다던 당초의 다짐은 어디가고 여야는 새삼 자기 나름의 「힘」 을 동원해 목표를 관철하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같은 대결국면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속단할수 없지만 그과정에서 「파국」 이나 「위기설」을 보다 실감나게 느끼게될 우려도 그만큼 점증하고 있는 셈이다.
우선 정가의 가장 큰 관심은 민정당의 개헌안 단독 발의 시사가 엄포냐, 진심이냐 하는 점이다.
민정당은 채문식 헌특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헌특의 단독운영 가능성을 먼저 띄운후 18일에는 이치호 간사의 발언으로 헌특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여야합의 과정없이 민정당 주도에 의한 의원내각제 개헌안 발의를 시사했다.
이에대해 민정당 당직자들은 이간사의 발언이 야당을 헌특에 끌어들이기 위한 엄포용이라고 강조하는 경향이다. 18일 소 헌특전체회의가 열린것 자체가 『헌특 정상화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라』는 노태우대표의 지시에 의한 것이며, 이간사가 신민당의 헌특 복귀를 촉구하면서 표현을 다소 강하게 한것 같다는 설명이다.
이한동 총무는 『민정당은 신민당 불참리의 헌특운영을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다』 고 말했으며 다른 당직자도 『이간사가 불필요한 언급을 해 신민당을 자극시켰다』며 노골적으로 불편해 했다.
그러나 이날 당헌특에 참석한 많은 민정당 의원들은 신민당의 복귀를 무한정 기다릴수도 없고, 개헌의 시기를 늦출 필요도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며 이간사가 민정당의 속셈과 최근의 여권기류를 솔직하게 전달한데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말해 민정당 내에는 최근들어 조기 통과주장이 눈에 띄게 득세하고 있으며 이간사의 발언은 돌관신호일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간사의 발언을 「엄포」 보다 「돌관」 쪽으로 보는 시각은 신민당쪽에서 더 강한 편이다. 적지않은 신민당 의원들이 『올것이 오는 모양」이라는 반응을 드러냈고, 민정당이 재적 3분의2 확보작업을 벌일때의 소용돌이와 야당의 반대 투쟁 사이에서 발생할 부가측의 파란을 미리 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신민당 내에는 민지당이 통과강행을 단행할때 그 자체를 막는 것은 불가항력일 것이라는 체념도 있고 그 이후의 정국풍향과 위상에 대비한 정치포석과 처신을 지금부터 해나가야 한다는 의식도 있다. 또 여권의 강행의지가 명백한 이상 야권도 힘을 보여야 한다는 차원에서 서울대회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논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아뭏든 지금 여야간에는 당대당의 합의개헌 가능성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민정당 주도에 의한 개헌안 통과시기가 연내냐, 내년초냐와 개헌안 통과가 파국까지 몰고 올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설이 무성할 따름이다.
연내설은 우선 시간을 끈다고 뾰족한 상황변화가 없을 바에야 빨리 매듭지어 가급적 개헌과 차기총선과의 시간를 넓혀 부작용 수습기간을 여유있게 갖자는데 근거한다.
특히 여건 조성면에서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로 국민의 일체감이 고조됐고 △김일성 사망설, 용공·좌경문제로 국민들의 보수반공 성향이 높아졌으며 △동절기에는 야권의 장외투정이나 학생들의 저항이 불리하고 △신민당 내의 양김에 대한 저항요인 강화와 유성환의원 구속으로 신민당 의원들의 위축이 두드러진 지금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내설에 대한 반대의견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우선 연내 강행은 합의개헌을 의한 노력의 측면에서 국민들을 설득하기가 어렵고, 다소 시간이 걸리고 진통이 따르더라도 민정당이 무던히도 참았다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개헌안 통과후의 부담을 줄인다는 계산이다.
또 연내 통과를 위한 3분의2선 확보에 아직 준비작업이 미비하며 민정당에 동조할 타정파 의원들이 명분을 찾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연내설은 실현성이 작다고 보는 견해도있다.
따라서 양설의 장단점을 고려할때 예산안이 통과된후 (12월2일) 이번 정기국회 (12월18일) 에서 민정당 주도로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단독 발의만 해놓고 내년 1,2월중 국회를 열어 통과시킨뒤 3월 학기 개학전에 국민투표까지 끝내는것이 현실적이라는 전망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 겨울을 적당히 넘기고 「춘계 대공세」를 펼치려는 신민당의 속셈대로는 해줄수 없다는 민정당의 의지가 확고하다.
신민당이 상당한 모험을 감수하며 11월29일의 서울대회를 결행하기로 한것은 민정당의 연내 통과설등에 자극받은데다 최근의 유성환 의원 구속· 민통련에 대한 조치등으로 위축된 야권 분위기에서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내부사정에 따라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풀이된다.
첫째 신민당으로서는 직선제붐이 민정당의 내각제 집중홍보, 건대사태등으로 초점이 흐려지고 당내 불만세력의 대두등으로 눈에 띄게 소강상태로 빠져든데 내심 초조해 있다.
게다가 양김씨는 당내 비주류의 조직적 반발, 무소속 의원들 (민중민주당) 의 대신민당 비난, 국민당의 직선제주장에 대한 침묵 경향등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김대중씨는 중앙상무위 녹음연설에서 『신민당 내에서 내통가능한 자를 매수하여 내각제 개헌안을 강행처리하려 한다』 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양김씨는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는 전술을 선택했으며, 처음엔 헌특복귀와 장외투쟁의 연기를 주장했던 김영삼씨가 김대중씨에게 끝내 동조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불출마선언을 앞세운 김대중씨의 당내 결속과 사기고양, 재야와의 연계확인 주장을 꺾을만한 명분이 약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신민당으로서는 서울대회가 수심만명이 모여 지나친 열기를 보여 파국의 구실이 돼서도 안되고 반대로 예상외로 사람이 적게 모이거나 냉랭해도 곤란하다.
결국 그전에 극적인 완화국면이 없는한 서울대회와 12월초의 국회예산안 처리를 기점으로 정국은 급격한 냉각과 대결로 흐를 위험성이 크고, 민정당이 회기말에 개헌안을 단독 발의하게 되면 그후의 과정은 여권의 계획된 정치구도에 따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국면이 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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