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베스트셀러극장-가을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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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어느 곳에도 삶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실향민들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그들의 방랑은 왜 그토록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가.
MBC-TV가 16일밤 방영한 『MBC 베스트셀러극장-가을행』(김원일 원작·최종수연출)은 이같은 물음에 깊이를 더해준 한편의 서정시였다.
이 작품은 이북의 고향을 못 잊어 떠도는 악사(오현경분)와 자신을 버린 작부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구두닦이 고아소년 봉수(최상진분)라는 두 실향민의 동행을 군더더기 없이 빼어난 영상으로 처리한 수작.
이땅에 정붙이기를 거부해온 악사 추선생이 마침내 『목포는 항구다』를 바이얼린으로 연주함으로써 수십년간 고집해온 오만한 예술을 속화시킨 것은 바로 봉수소년에 대한 내친의 정이였고, 이같은 정이 곧 삶의 뿌리(서로가 서로에게 고향이 되는)라는 암시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오씨의 섬세한 연기와 최군의 당돌함이 절묘한 하머니를 이뤘고 극을 끝까지 끌고 나간 에피소드들마다 강한 감동을 부여했다. 재방을 요청할만한 수준 높은 작품.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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