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는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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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진건의 단편『빈처』가 생각난다. 1921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무명작가의 아내가 가난에 쫓기며 사는 얘기다. 어느날은 끼니가 없었다. 그의 아내는 「모본단 저고리」라도 전당포에 잡힐 궁리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없다. 뒤늦게야 그 저고리는 벌써 전당포에 가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가난한 집에 부부싸움이 없을리 없다. 아내는 참다못해 남편에게 면박을 주었다.
『당신도 살 도리 좀 하세요.』
남편은 그 말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막벌이꾼한테 시집을 갈 것이지, 누가 내게 시집을 오랬소!』
금방 주먹이 올라갈 것 같은 분위기인데, 무명작가는 몰풍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에그!』
『빈처』의 한 대목이다. 그런 가난에 찌들린 얘기 속에도 미소를 짓게 하는 장면이 있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그 무명작가를 비웃는데 『마누라까지 나를 아니 믿어주면 어찌한단 말이오』하는 독백이다.
그 말에 아내는 그만 『여보!』하며 흐느껴 울고 만다. 나중엔 그의 뜨거운 뺨을 남편의 얼굴에 비빈다.
정작 남편으로부터 피멍이 들게 두들겨 맞은 아내는 무명작가의 처형이었다. 처형의 남편은 돈푼 깨나 있어 비단옷을 두리두리 감고 산다. 그러나 그 남편은 『기생을 얻어 날뛰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강짜를 부리면 여지없이 밥상이 뒤집히고 그 뒤로 주먹이 날아왔다.
조강지처(조강지처)는 바로 빈처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지게미와 쌀겨(조강)를 먹고 산 아내. 고통을 함께 나눈 부부일수록 사랑도 깊고 신뢰도 두텁다.
우리 선조들은 가난과 시름에 쫓기면서도 「조강지처」의 미덕을 기렸다. 조선 왕조때 국민 교과서로 쓰인 『명심보감』엔 이런 얘기가 있다.
여자가 칭찬 받을 네가지 덕목이 있는데, 그것은 덕·용·언·공이다. 「덕」은 염치와 분수를 아는 덕성이고, 「용」은 심신의 정결, 「언」은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일, 「공」은 손님을 접대할 수 있을 정도의 음식솜씨와 살림솜씨.
물론 남편의 덕목도 빼놓을 수 없다. 『남편은 두레박, 아내는 항아리』라는 우리 속담도 있지 않은가. 훌륭한 남편이 훌륭한 아내도 만드는 것이다.
「F·베이컨」은 그의 『수상녹』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아내란 청년에겐 연인이고, 중년에겐 친구이고, 노인에겐 간호원이다.』
이런 생각에 어디 동서가 따로 있겠는가.
우리나라에 『매맞는 아내』가 15%나 된다는 통계가 있었다. 30대 전후의 부부중에 특히 때리고 맞는 사이가 많다.
현대판 『명심보감』이라도 국민교과서에 포함시켜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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