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당의 헬밋 해프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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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1일 저녁 정가의 핫 이슈인 민통련 해산 조치를 둘러싼 여야간의 격돌이 예상돼 긴박감마저 감돌던 국회 내무위 주변에 빨간색 정찰 헬밋이 등장, 눈길을 끌었다.
밤 9시쯤 회의 속개 직전, 신민당의 박왕식 의원은 문제의 헬밋을 회의장으로 들고 가려다 입구에서 경위와 승강이를 벌였고, 위원장실에서 권정달 위원장은 지난번 김동주 의원 (신민)이 최루탄 묻은 옷을 던졌던 사건을 지적하면서 『헬밋을 갖고 들어가면 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고 버텼다.
헬밋은 신민당 총무실에 증거품으로 보관시키기로 하고 회의는 열렸으며 박 의원은 신상발언을 얻어 자신이 이날 경찰에 실려온 경위를 설명하며 경찰의 조치를 비난했다.
『오늘 민추협 농성 현장에 갔다가 동료 의원들과 함께 경찰에 강제로 「닭장」(호송버스)에 실려 여의도까지 끌려 왔다』『상부 지시가 없다고 버스에서 내려주지 않아 생리작용을 느낀 동료 김봉욱 의원이 길 옆 고수부지에서의 용변 허용을 요청했지만 경찰이 거부하면서 투석방어용 헬밋을 내주어 변을 봤다』 .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전경들이 의원님들을 몰라보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사과했다.
헬밋에 관한 소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일막극은 이처럼 내무위에서는 끝났지만 국회주변에서는 이런 개명 천지에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수군거림이 한동안 계속됐다.
의원을 「닭장차」에 태워 강제 호송하는 것까지는 전례도 있어 그런대로 넘길 일이라고 하더라도 용변을 실내에서 헬밋에 보도록 하는 처사는 무슨 말로 설명하고 합리화될까. 「상부지시」가 없어 하차가 안된다고 한 그 경직성을 생각하면 기가 찰 노릇이다.
문제의 그 헬밋을 국회의사당에까지 들고 온 처사에 대해서도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많았다.
헬밋 없이도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설명할 수 있고 경찰의 처사를 맹박할수 있지 않느냐는 극히 상식적인 비판이었다. 국회가 이처럼 희화화돼서야 되겠느냐는 지적을 당사자들은 다같이 아프게 느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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