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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타이틀 하나 따고 싶어” … 성공하면 ‘한·미·일 소방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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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25면

연말까지 국내에 머물 예정인 오승환은 “쉴 때는 운동을 다 잊고 푹 쉰다. 먹고 싶은 것 찾아서 먹다 보니 살도 좀 찐다”고 했다. 김성룡 기자

‘The Final Boss’는 한국어로 ‘끝판대장’이다. ‘Stone Buddah’는 ‘돌부처’다. 콩글리시 분위기를 풍기는 이 단어들은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별명을 영어로 표현한 것이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의 오승환 소개란에 이 별명이 적혀 있다. 한국 KBO리그(삼성 라이온즈)와 일본 프로야구(한신 타이거스)에서 세이브왕에 올랐던 마무리투수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진출 첫 해 ‘미국 소방서’도 접수했다.

오승환이 볼펜으로 야구공에 사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오승환이 루키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지난 8일 귀국했다. 올 시즌 성적은 76경기(79.2이닝) 6승 3패 19세이브, 평균자책점 1.92. 시즌 절반을 넘어선 7월에 마무리로 보직을 바꿨지만 23차례 세이브 상황(승리를 지킬 수 있는 조건)에 등판해 열아홉 번 임무를 완수했다. 세인트루이스 구단도, 팬들도, 미디어도 놀란 활약이었다. 심지어 오승환의 부친도 “승환이가 미국 진출 첫 해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고 했다.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는 오승환을 지난 13일, 서울 쉐라톤 팔래스 강남 호텔에서 만났다. 라운드 티셔츠를 입은 그의 상체는 우람하고 단단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질문의 요지를 확인하고 꼭 필요한 답만 내놨다. ‘최소 투구로 최대 효과’를 지향하는 마무리투수다웠다.


-시즌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서운하진 않았나.(세인트루이스는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이겼지만 샌프란시스코에 밀려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한국과 일본에서는 당연히 가을야구를 했으니 좀 어색하긴 하다. 시즌 막판에 다리가 좋지 않았는데 더 쉴 수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홈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는데.“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알아봐 주시고 응원을 해 주셨다. ‘파이널 보스’ 마킹을 한 유니폼을 입고 오시는 분들도 많았다.”


-포수 야디어 몰리나와 호흡이 잘 맞았는데.“몰리나는 영리하고 경기 운영에 여유가 있다. 결과가 좋으니까 좋은 평가가 나오고 우리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몰리나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날 믿고 따라와라’ 며 믿음을 줬다. 대부분 몰리나의 사인 대로 던졌고, 결과가 괜찮았다.”


-패스트볼(직구)과 슬라이더, 가끔 왼손 타자를 상대로 체인지업을 쓸 정도로 투구 패턴이 단순했는데 그게 통했다.“아무리 위력적인 공과 다양한 구종을 갖고 있어도 그걸로 이길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컨트롤이다. 타자와의 타이밍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제구가 안 돼 실투가 나오면 치명적이다.”


-오승환의 직구는 속도(최고 시속 156km)가 좋은 데다 볼 회전이 많아 맞아도 멀리 나가지 않는다. ‘돌직구’와 손의 악력(쥐는 힘)이 관련 있지 않을까.(오승환은 TV에 나와 사과를 가로로 쪼갰을 만큼 손아귀 힘이 좋다.)“악력과 볼 회전수의 과학적인 관계는 정확히 모른다. 도움이 되는 것 같기는 하다. 중학교 때 코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엄지·검지·중지 세 개로만 정구공·테니스공을 누르는 훈련을 꾸준히 했더니 악력이 좋아졌다.”


-올 시즌 76경기에 나섰는데 혹사의 느낌은 없었나.“프로에 들어온 이후 가장 많은 경기를 뛰었다. 하루 두 차례(더블헤더) 경기에 나와 모두 세이브를 올린 적도 있다. 그렇지만 무리한 등판은 없었다. 현대야구는 포지션과 역할에 맞는 틀이 있다. 그것만 지켜지면 혹사라고 할 게 아니다.”


-이국 땅에서 많이 외로웠을 텐데.“블론 세이브(승리를 날려버리는 것)를 한 날은 소맥 한 잔 생각이 간절했다(웃음). 한국과 일본에서는 그럴 수 있었다. 미국에선 밤늦게 술 파는 데도 없고, 같이 마실 사람도 없었다. 차라리 일찍 자고, 야구로 받은 스트레스는 야구를 잘 해 풀자고 생각을 바꿨다.”


-같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소속 강정호(29·피츠버그)에게 9월 7일 홈런을 맞았다.“솔직히 실투가 아니었는데 정호가 잘 쳤다. 정호는 메이저리그 2년 만에 엄청 실력이 늘었다. 어디까지 성장할지 모를 선수다. 추신수(34·텍사스)는 산전수전 다 겪어서 노련했다. 투 스트라이크를 잡고도 안타를 내줘 아쉬웠다. 박병호와는 시즌 중 맞상대를 안 해봐서 잘 모르겠다.”


오승환의 트레이드마크인 ‘무표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의 야구관을 엿볼 수 있었다.


-돌부처같은 무표정은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인가.“마운드에서 웃을 일은 없지 않나. 그렇다고 인상 쓰는 것도 아니고. 경기에 집중할 뿐이다.”


-무사 1, 2루에서 올라와 병살타를 유도했다고 하자. 활짝 웃거나 큰 세리머니를 하는 투수들도 있지 않나.“투아웃에 주자 3루가 된다. 경기가 끝난 게 아니다. 한 방 맞거나 폭투를 하면 실점이다. 더 집중해야지.”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 경기가 끝나도 표정이 그대로다.“삼진 잡았다고 마운드에서 퍼포먼스 할 필요 있나. 상대 감정만 건드릴 뿐이다. 그 타자는 다음에 또 만난다. 쓸데 없는 감정을 주고받을 이유가 없다.”


그는 야구 유니폼을 벗으면 평범한 청년이 된다.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장난도 잘 친다. 씀씀이도 큰 편이다. 이 ‘상남자’는 염문도 꽤 뿌렸다. 걸그룹 소녀시대 유리 등 톱스타들이 그의 옆에 있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나이가 들었다고 하는 게 아니다. 당장이라도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면 할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야구가 먼저다. ‘이런 스타일이 좋다’는 건 없다. 만나서 통하면 된다.”


-원정도박으로 징계를 받았는데.“남에게 피해를 준 게 아니라고 해도 물의를 일으켰으니 사과하는 게 맞다. 반성하고 KBO의 징계를 받아들인다.”


내년에는 오승환이 붙박이 마무리로 시즌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만큼만 던진다면 산술적으로 50세이브도 가능하다. 그는 “팀이 이겨야 세이브가 올라가니까 성적을 예측하긴 어렵다. 하지만 응원해 주시는 팬들과 한국 야구를 위해 타이틀 하나는 따고 싶다”고 했다. 올 시즌 내셔널리그 구원왕에 오른 쥬리스 파밀리아(뉴욕 메츠)는 51세이브를 올렸지만 평균자책점(2.55)은 오승환(1.92)보다 못하다. ‘한·미·일 소방왕’이 먼 일만은 아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가져간 야구공에 사인을 받았다. 그는 사인펜 대신 볼펜을 달라고 한 뒤 “볼펜으로 해야 가죽에 잘 스며들어 나중에 보기가 좋아요”라며 웃었다. ‘돌부처’는 의외로 섬세하고 따뜻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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