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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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국이라는 말이 있다. 양귀비를 잃은 현종 황제가 원한의 정을 읊은『외 한가』에 나오는 말이다.
여인의 아름다운 용모는 요물과 같아서 임금이 이에 미혹되면 국력마저도 기울어 끝내는 멸망하고 만다. 그런 뜻으로 경국이라 했다.
어디 아름다운 여인뿐인가. 관리가 재물에 미혹되어 부패해도 경국이고, 사회가「소돔과 고모라」판이 되어도 경 국이다.
경구 만들기의 명수인 중국사람이 이번엔 오 국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아직 사전엔 입적되지 않은 이 말은 요즘 호요방 중공 총서기가 발표한 신어.
그는 최근 일본의 한 여류작가와 만난 자리에서 일본의 오국 주의를 비판했다.
나라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행동이나 사상을 두고 한 말이다.
호는 일본이 중공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장개석 총통을 높이 받드는 모임이 열리고 있는 것을 보고 오국 주의라고 했다.
그런 시비야 두 나라에 맡겨 둘 일이지만 오국 이라는 말은 재미있다.
요즘은 어느 나라나 매국주의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나라사이의 국제관계가 워낙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옛날 식민주의시대와 같은 매국 풍조는 좀처럼 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 대신 경국 풍조가 만연하고「오국」주의가 고개를 드는 것 같다.
최근 경국 주의의 대표적인 나라는「마르코스」시대의 필리핀을 들 수 있을 것이다.「마르코스」내외는 재물만을 탐해 필리핀은 한때 경국의 지경에까지 갔었다.
오국 주의는 가령 개방정책시대에 수입보다 수출에만 몰두하는 일본의 경제정책을 예로 들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애국 같지만, 지금은 일본을 고립시키는 오국 주의로 비판을 받게 되었다.
개발도상국들이 저마다 민주화의 상쾌한 바람을 맞고 있는데 유독 군사독재를 고집하는 칠레 같은 나라도 이를테면 오국 주의의 모델이다.
오국 이든, 경국 이든 그 나라를 구하는 것은 우국충정이다. 우국은 정치인들의 입담 좋은 웅변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국민 모두의 깊은 마음속에 있다.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은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 정치적으로는 주권국으로서의 권리를 지키며, 경제적으로는 낭비적이기보다 생산적이고, 정신적으로는 근면하고 성실하다.
경국을 막고, 오국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국하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수다스런 애국자들은 많이 보아 왔지만, 말없이 실천하고 행동하는 우국지사는 별로 못 보았다. 오늘이야말로 그런 지사가 있어야 할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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