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소 짝사랑" 깊어졌다|일 무역진흥회 관계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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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최철주 특파원】김일성의 소련방문은 일본정부뿐만 아니라 동경 외교 가에서도 상당한 주목거리가 되고있다.
김일성이 2년 반만에 다시 소련을 방문하는데는 그만큼「다급한 사정」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과 소련의 대응이 한반도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일본통산성의 산하기관인 JETRO(일본무역진흥회)는 방대한 해외경제정보를 수집해서 분석한『북조선의 경제와 무역전망-85년 회고와 86년 전망』에서 북한이 소련에 경 사된 경제적·군사적 배경과 친소일색의 정치·사회적 현상을 설명하고 있어 흥미를 끌고 있다. 다음은 이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소련과 북한의 관계는 84년 김일성의 방소 이래 85년 외교부장 김영남 및 정무원총리 강성산의 모스크바 방문과 지난 1월「셰바르드나제」소외상의 평양방문 등으로 정치·군사·경제면에서 현저하게 긴밀해 졌다.
김일성이 84년 소련을 다녀온 직후 북한은 16년여만에 소련이 첫 번째「형제 국」임을 확인하는 등 대소접근 노력을 해 왔다.
이후 쌍방은 지난 61년에 체결됐으나 거의 유명무실했던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을「국가관계의 기초」로 재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조약과 협정을 맺었다. 예를 들면 86∼90년의 5년간에 걸친 경제·기술협력협정과 북한의 원자력발전소건설에 대한 경제·기술협력협정, 영사조약, 경제수역 및 대륙붕의 경계에 관한 조약, 시민의 상호여행에 관한 협정 등 이 있다.
소련의 대북한 경제·기술원조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북창 알루미늄공장 가동과 평양 북쪽의 원자로 건설이 소련의 협력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5월에는 소-북한이 군사 면에서 긴밀해졌다는 인상을 주는 최초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북한군 소장을 단장으로 한 미그-21 전투기편대가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고 이 지역 해군기지에 있는 미그-23 편대가 북한을 방문했는데 이는 항상 전투태세에 있는 전투기 편대의 상호방문이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부주석 박성철은 작년 8·15경축식에서 소련을 가리켜『조국의 해방위업을 피 흘려 도왔다』『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고 칭찬했다. 8·15행사가 친소일색이 된 것은 20여 년만의 일이었으며 당시 평양을 방문한 조총련관계자들은 그 같은 변화에 대해 평양시민들이 가장 놀랐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지금까지 소련의 붉은 군대가『8·15해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언급이 60년대 이후 사라졌으며 김일성 선집에서조차 소련을「해방의 은인」이라고 한 표현을 삭제할 만큼 대소관계가 악화됐으나 이 같은 금 구는 이제 금 구가 아니다.
북한은 유럽 여러 나라와 경제교류를 가지려고 애썼으나 진척이 없었으며 중공에도 의지할 수 없으니 자연히 소련 쪽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미·일·중공의 관계진전에 대한 경계심에서도 그렇다.
북한이 기대하는 경제·기술협력을 소련이 얼마만큼 공 여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이나 소련이 북한을 위해 큰 희생을 치르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군사 면에서의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 금년 봄 소련공산당 제27차 대회에서「고르바초프」서기장이 강화하겠다던 사회주의 공동체에는 북한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80년이래 북한의 대소무역은 수출초과를 나타냈으나 작년(수출 4억7천만 달러·수입 7억5천만 달러)에는 2억8천만 달러 적자로 돌변했다. 84년 김일성의 방 소를 계기로 물자가 많이 수입되었다.
북한이 소련에서 들여온 주요 품목은 기계·설비 및 원유·면화 등이다. 수출품목으로는 압연 강재·의류 및 수송기계 등 이 있다. 북한의 작년 수출액은 10억1천만 달러, 수입액은 14억8천만 달러이며 이 가운데 대 중공무역은 수출이 2억4천만 달러, 수입이 2억3천만 달러로 소련에 비해 그 규모가 매우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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