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위원회의 신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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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안으로 마련된 대외무역법안은 그 골격으로 보아 일단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다.
정부는 지난 67년 제정한 현행 무역거래법으로는 개방화시대의 각박한 국제무역환경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새 법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무역거래법이 제정될 당시만 해도 국제무역질서는 GATT(무역관세일반협정) 체제하에서 공정한 무역이 보강되었기 때문에 선진·개도·후진국간에 무역마찰은 큰 고비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60년대는 이제 막 무역에 눈을 뜨는 시기로 수출진흥과 수입억제에 역점을 둔 관리무역체제를 겨냥하고 무역거래법을 제정했었다.
그후 무역규모가 확대되고 국내시장의 점진적 개방이라는 새로운 상황에서도 새 법 제정보다는 기존 법을 몇 차례 개 정함으로써 대응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무역거래법만으로는 현실타개가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입법이 절실하게 되었다.
선발개도국으로서 문호개방의 압력을 받고 실제로 수입개방과 함께 수입상품이 물밀듯이 들어옴으로써 국내산업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는 마당에 우리로서도 안일하게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대외무역법안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이번 대외무역법안은 국내산업보호라는 일종의 무역에서 자위적 성과를 기대하는 측면이 있고 불공정한 거래에 대해서는 그것으로 규제하면서 대외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는 자유무역체제를 지향하는 뜻이 담겨 있다.
대외무역법의 큰 줄거리는 미국의 ITC(국제무역위원회)와 유사한 기구로 무역위원회를 두어 수입급증으로부터 국내산업을 보호하고 피해를 덜며 수출입허가제는 당분간 계속하되 장차 완전 자유화를 전제로 일부 수출입품 가격공고, 수출입 이행담보 제공 등을 완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매년 1회씩 하던 기별공고가 계속 효력이 있도록 한다는 것도 주요 내용중의 하나다.
여기서 국내외적으로 우리가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무역위원회」의 설치다.
지금까지는 수입급증이나 수입급증 우려가 있을 때는 덤핑관세나 상계관세 등 주로 관세법으로 다스려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업계의 피해 진정을 받아 무역위원회가 피해판단, 구제필요성 판단, 구제조치 건의를 하게 되고 나머지 법정절차를 거쳐 국내 산업을 보호하게 된다.
미국에는 이미 이런 기구가 있지만 일본이나 대만 같은 나라에는 이 같은 기구가 별도로 없다.
일본은 교묘한 비관세장벽 등으로 자국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입장에서는 무역위원회와 같은 기구가 더 절실하다. 선진국들이 원가가 싸게 먹힌 석유화학제품을 한국에 마구 덤핑수출해도 당하고만 있던 현실을 생각하면 이 같은 기구의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기구가 얼마나 효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기구설치 자체만으로는 대한 덤핑수출예방 등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무역위원회」가 원래 취지대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컬러TV를 비롯해, 우리의 대미 수출상품이 덤핑 수출했다고 주장하면서 ITC가 개입하고 한미 양국정부와 민간업계간 큰 씨름을 한 경험을 되 새 겨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강자의 논리로 ITC를 운용해 오고 있다. 한국이라는 수출시장을 교란할 가능성은 힘센 선진국들이 더 많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무역위원회」가 다루게 될 케이스가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을 것으로 가정하면 무역위원회 설치로 얻은 실리, 그리고 대외적으로 번질 자극을 요량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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