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연기 안 맡을 권리|권일<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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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담배를 피우는 것이 당신의 자유라면 담배연기를 싫어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존중돼야 한다』- 이른바 혐연권을 주장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높아지고 있다.
담배는 피우는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해독을 주지만, 피우지 않고 옆에서 그 연기를 마시면 더 큰 해를 입는다는 연구보고도 있기 때문에,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는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사부는 지난 연초부터 현재 국회에 계류증인 공중위생법이 제정될 경우 시행 규칙 속에 이 혐연권을 명문화하고, 사무실이나 공중이용시설에 끽연시설을 의무화하는 한편, 이를 어길 경우 50만원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을 마련했었다.
그러나 보사부는 이를 21일 내놓은 시행규칙 입법 예고과정에서 삭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이르다는 장관의 판단 때문이다.
보사부책임자의 이 같은 판단은 담배의 해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보사부가 예상되는 시행상의 어려움을 앞세워 국민보건을 외면하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시행규칙을 입안한 실무자는 일반의 반발을 걱정하면서도 담배연기의 해독에 비추어 공중위생법을 새로 제정하는 마당에 이를 빼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행책임을 져야 하고, 일반사회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이 있는 경우를 생각해야 하는 책임자로서는, 이를 명문화한 뒤까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실제로 공중이용시설물의 실내공기 청정도 규제만으로도 선언적 의미는 있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실내공기의 일정수준 이상의 청정도 유지 책임만을 명시한 채, 혐연권을 인정하려던 조항은 공중위생법시행규칙에서 빠지게 됐다. 실무자의「의욕」은 책임자의 신중한 고려로 유보됐다.
「죽음의 연기」로까지 불리는 담배연기 속에는 4천 종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고 폐암 등 10여종의 발암물질 및 20여종의 각종 질병 유발 물질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이 같은 해독물질은 빨아들이는 연기보다 내뿜는 연기 속에 더 많이 함유돼 있다고 한다.
이번 보사부의 혐연권 입안·유보의 과정을 보면서 점차 높아가고 있는 일반의 공중위생에 대한 관심이 또 한차례 외면 당하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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