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연한 한국 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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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희 언니! 양심을 속이지 말아요. 분명히 손가락에 맞고 튕겼는데 그렇게 시치미를 뗄 수가 있어요? 우리 양영자 선수를 봐요. 정말 멋지지 않아요. (한국 이선 선수)
『심판원이 가만히 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나서냐, 바보나 나서지니(북한 조정희 선수)
『기렴. 결과 적으로이기는 것이 최고지. 이럴 땐 모르는 척하는 게 최고다.』(북한 김영희 선수)
12일하오 제8회 아시아 탁구 선수권대회가 벌어지고 있는「선쩐」(심천)체육관에서 이선 선수가 코트 밖에서 만난 북한선수들과 전날 있었던 여자 단체 준결승전에 관해 가볍게 나눈 얘기다.
이날 2승1패로 앞섰던 한국은 승부의 분수령인 4번째 단식에서 양영자가 이분희와 맞서 1세트를 21-9로 이긴 후 2세트에서 14-11로 지고 있을 때 리시브한 볼이 아웃」인데도 심판이 착각하여 세이프로 판정, 2점차로 따라 붙었다. 그러나 양 선수는 북한측이 항의하는 순간 즉각 심판에게 달려가 자신이 보기에도 아웃이었다고 솔직히 말해 스코어가 15-11로 바뀌었다. 만장한 중공관중들이 감동의 박수갈채를 보냈음은 물론이다. 결국 양 선수는 2, 3세트를 모두 잃고 말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한의 조정희는 마지막 5번째 게임 3세트에서 16-12로 이기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손에 맞고 리시브된 볼을 심판이 그냥 지나친다고 시치미를 땐 것이다. 양 선수는 경기가 끝난 후 한 임원이『결정적 고비인데 심판이 정정하기 전엔 모르는 척 할걸 그랬다』며 아쉬워하자『그렇게 해서이기면 뭘 해요?』라고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아시안게임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한국탁구는 심천 아시아 탁구선수권 대회를 통해 종전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세계최강의 중공을 꺾었었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선수들의 의연함이 눈에 띄게 자란 것 같다.
한국의 탁구쿠데타」가 불과 보름천하로 끝났어도 중공 측은 최강의 라이벌로 여전히 한국을 꼽는데 인색치 않다. 중공 팀의 에이스들이 노쇠한 반면 한국선수들은 어린데다 층도 두터워 요 경계대상이라는 것.(중공 총감독 말)비록 심천 대회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은 못 올렸지만 중공총감독의 말처럼 한국탁구의 앞날은 여전히 밝다는 느낌이다. <중공 심천에서>
이민우<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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